내면으로의 여행 — 반도체는 우리 먹거리로 계속 남을 수 있을까?
한국이 앞으로 이 분야의 강자로 남으려면 극복해야할 것
나는 전자공학도다. 지금은 소프트웨어에 빠져 개발 공부를 하는데 여념이 없지만, 내 분야인 전자공학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있다. 소프트웨어를 공부하면 논리 연산자(Logical Operator)라는 것을 배우게되는데, 이때 &&(AND)
, ||(OR)
혹은 !(NOT)
연산에 대해 접하게된다. 이들은 내가 전자공학도 시절 배웠던 디지털논리회로이론(Digital Logic Circuit)에서 다루는 개념들이기도 했다.
소프트웨어를 깊게 공부하면 할 수록, 하드웨어 분야의 기본지식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그러한 현상 자체가 컴퓨터의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와 전자회로로 대표되는 하드웨어가 근본적으로 뿌리가 같다는 큰 증거라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내가 회로설계이론을 조금 더 열심히 배웠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많이든다.
하드웨어에서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산업은 반도체(Semiconductor)다. 도체(Conductor)와 부도체(Insulator)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어 특정한 조건에서 전기를 통하게하고, 그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기를 차단하는 물질이다.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스위치가 가장 대표적인 반도체의 예라 볼 수 있다.
이 반도체 분야는 오늘날 “산업의 쌀"로 여겨지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클라우드 등으로 대표되는 가까운 미래의 신 IT 산업 분야들은 매우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다루어야하며 그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는 두뇌가 필요하다. 그 인공두뇌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반도체이며, 이 것 없이는 그 어떤 뛰어난 소프트웨어도 작동할 수 없다. 아무리 엄청난 지적 능력을 가진 한 영혼이 있다고해도 그것을 실제 현실에서 가동할 육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인 것과 같다.
이 반도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이 분야를 리드하는 회사들은 손에 꼽는다. 그 어떤 다른 산업보다도 시설 및 장비를 마련하는데 있어 엄청난 투자가 요구되기에 매우 진입장벽이 높다.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고성능의 반도체를 만들어 공급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설계 및 개발기술, 생산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고도의 지식이 집약된 산업이기에 그에 맞는 교육을 받은 인간들만이 기여가 가능하다. 즉,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자본이 있고, 반도체 생산과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인재를 가진 곳에서만 도전할 수 있는 산업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국가는 전세계에서도 많지 않다.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그리고 유럽의 독일, 영국, 네덜란드, 마지막으로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미국이다.
운 좋게도 이렇게 열 손가락에 겨우 넣을 수 있는 반도체 기여국 중 한 곳이 우리나라라는 사실이 매우 기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삼성과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메가기업이외에는 사실 전세계에서 영향력을 가진 회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매우 뛰어난 성과를 올렸지만, 훨씬 더 큰 시장이 있는 비메모리, 즉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는 존재감이 매우 미비하다.
눈 앞의 이익을 쫓아 수십년전 당장의 수익성이 좋은 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서는 일본을 누르고 세계 1위를 달성했는데, 이제는 더 큰 도전이 기다리고있다.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우리의 메모리 기술력을 따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을 따돌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복잡한 기술력을 요구하지 않는 예를 들어 낸드플래시(NAND Flash) 메모리 분야에서는 격차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HBM이라는 엔비디아(NVIDIA)가 만들어내는 NPU(인공지능 반도체)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는 우리나라지만, 여전히 메모리 시장은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합해 매우 작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우리의 점유율은 삼성과 하이닉스를 합해 70~80%까지 되지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는 1~3% 정도로 굉장히 미미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반도체 산업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우리가 못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전세계에 있는 우리의 경쟁자들과 우리안에 있는 강자들은, 치열하고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가득한 이 분야에서 미래먹거리를 찾기 위해 각자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최근 SOD(에스오디)라는 유튜브 채널의 운영자인 권순용씨가 지은 <K반도체 대전략>을 읽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왜 우리는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를 못하지?
어쩔 수 없었던 이유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시스템 혹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놓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공장 즉 파운드리(Foundry)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삼성전자인데, 삼성은 팹리스(Fabless)가 아니라는 특징이 존재한다. 팹리스는 공장이 없이 설계만하는 회사인데, 삼성전자는 직접 반도체를 생산하는 일도 하므로 팹리스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해서 TSMC처럼 공장만 가진 파운드리라고 할 수도 없다. 삼성전자는 그래서 IDE(종합반도체회사)로 분류되는데, 바로 이 점에서 국제적인 시스템 반도체 팹리스 회사들인 엔비디아, AMD, 퀄컴(Qualcomm), 애플(Apple)등과 협업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본래 반도체는 보안성이 중요한 분야이기에 설계도와 같은 기술적 정보를 주고 받는 행위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럽다. 설계를 하는 입장에서 제조를 하는 회사에게 반도체 생산을 주문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야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제조회사가 그 정보를 자주 접하면 필연적으로 특정 회사의 기술에 상당부분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에게 자신들의 GPU에 사용할 메모리 반도체를 위탁할 경우 어떤 식으로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하게되는데, 이때 삼성전자가 제조 방향에 대한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GPU가 어떻게 데이터를 저장하고 전력을 공급받는지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만약 제조사가 설계사의 기술 정보를 학습해 본인들도 반도체를 설계하기 시작한다면 본의아니게 기술을 유출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팹리스 고객사들의 염려를 일찍이 파악했던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내세워 아예 설계를 하지않고 제조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설계사로 하여금 기술 유출의 위험성을 없애버린 것이다. 그 약속으로 신뢰를 얻은 TSMC는 전세계의 많은 거대 팹리스 회사들의 1순위 제조 파트너로 급부상했고 오늘날 이 회사는 대체나 추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반도체 파운드리 영역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게 되었다. 반도체 생산을 위해 막대한 대금을 받게되니 그 돈으로 하여금 더 발전된 공정기술에 투자가 가능했고, 그 선순환이 계속 이어지면서 TSMC는 최첨단의 반도체 공정기술을 보유한 파운드리 최강자가 되었다.
반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뿐 아니라 직접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이기에, 제 아무리 비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했다고해도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것이 상대적으로 힘들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TSMC에 비해 고객의 수주가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삼성전자가 자신들이 잘하고 있던 메모리 반도체 영역에 머물렀다면 모르겠으나 엑시노스(Exynos)와 같은 모바일용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plication Processor, AP)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고객들의 의심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 점은 삼성전자가 나쁜 것이라고 볼 수 만은 없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메모리 영역에만 머무르는 것 보다는 점차 비메모리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넓혀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이 회사나 국가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허나 태생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파운드리만 전문으로하는 회사가 없고, 삼성과 하이닉스는 반도체를 직접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설계도 같이하기에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다행인 것은 파운드리 시장에서 2인자라고 하더라도 TSMC가 모든 반도체의 물량을 소화하지 못한다면 다른 대안으로써 삼성전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물량을 수주하는 것 만으로도 TSMC와 비교는 안되지만 꽤 상당한 파운드리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다.
우리가 잘 못하고 있는 것
그러나 국제적인 정세나 정치적인 상황이 우리에게 불리하다고해서 우리의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문화적으로 가진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긴 호흡"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즉, 기다려줄 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전 대통령까지만해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재재의 대항해 국산화를 진행했다. 당시만해도 일본이 반도체 소재 시장에서 매우 높은 점유율을 구가하고 있었고, 반도체 제조 공정의 특성상 조그만 불량이나 실수가 수백억 혹은 그 이상의 손해와 직결되기에 기존 공급망을 잘 바꾸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문제때문에, 또 국내 중소기업들을 살릴 목적으로 대대적인 소재 국산화를 진행했다. 모든 분야에서 성공적이지는 않았으나 일부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정책이 현 대통령에 와서는 파기되었다. 따라서 이전까지 계속 소재를 개발했던 회사들이 갑작스럽게 기존 일본 소재 업체들에 다시 대체되어 이들은 상당한 손해를 보게되었다. 이러한 소재 개발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므로 대기업이나 정부가 전격적으로 지원을 해 주어야하는데 정부는 정책을 폐기했고, 대기업은 아무리 국내 업체라도 품질이 보증되지 않는 소재의 사용은 전체 반도체 공정에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판단에 현실적으로 기존 일본의 소재 공급 업체들과 다시 계약을 했다.
특정 정권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단히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소재 회사를 살리고 장기적으로 일본에 대한 대외 의존도를 다변화해 정치적인 영향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게 목적이었지만, 대통령이 바뀌면서 정책이 연속성을 갖지 못하게되었다. 일단 무언가 의미있는 목적으로 어떤 일을 시작했는데, 제대로 뭘 해보기도 전에 끝난 느낌이다. 아쉬운 것을 넘어서 허탈하다. 물론 우리나라가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모든 것을 1부터 10까지 모두 자급자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가 정치적 비기가 되어가는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외부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시도가 필요했다. 필자는 이러한 전정부의 정책을 높게 평가했고, 이러한 정책의 방향을 새정부에서도 계속 이어가기를 바랬다. 정치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더 활성화했으면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수의 국민들은 나와는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앞으로도 이 정책이 일관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아쉬움을 느낄 것 같다.
다음으로 우리의 문화적인 문제는 “의대 쏠림 현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현실적으로 공대를 나와 직장인이 된다고 가정할 때, 일반적인 사람들은 나이 50에 가까워지면 은퇴를 바라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 놓인 중년층들을 보아온 지금의 청년들이, 나이가들면 청춘을 바쳐일한 곳에서 쫓겨나야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이제 100세까지는 무난히 사는 시대가 왔음을 가정했을 때 매우 불안하게 느낄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주요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남은 50살을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야한다면 누가 그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고 싶을까? 물론 그 중에도 임원으로 올라가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지만, 무조건 실력만 있다고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반면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된다면, 일반 직장인은 꿈에 꿀 수 없을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의사가 되기위한 레지던트 과정 등을 거치는 것이 매우 오랜시간과 노력을 요구하지만, 그 이후에 따라오는 보상과 노후에 대한 보장은 다수의 인재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물론 의사들도 매우 많은 시간을 일해야하지만, 대기업 직원에 비해 일하는 시간 대비 훨씬 더 많은 소득을 평균적으로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가 될 수 있는 선택과 반도체 대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진다면 의사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는 것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결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급여를 조금더 올리더라도, 엔지니어의 급여를 의사만큼 벌 수 있게 해 줄 수는 없을까? 실리콘 밸리에서 활약하는 엔지니어들만큼의 연봉을 줄 수 있다면 인재들이 반도체 업계에서 일하는데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회사를 보유한 한국이라면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정말로 그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직접적인 금전적 보상이외에 다른 방안을 최대한 모색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엔지니어들에게 명예퇴직 기간만큼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면서, 퇴직 후에는 후임 양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멘토로써 기업들이 고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들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도록 대학등 고등교육기관에서 조교수 등으로 모시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혹은 초중등학교에 초빙되어 청소년들에게 반도체 업계에 대해 알려주거나 그들이 반도체 엔지니어의 꿈을 품을 수 있도록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도울 수도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 수십년을 일한 퇴직자들은 분명 기술자들로써 사회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치가 매우 높다. 이들이 퇴직 후의 삶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여러가지 사회적 제도나 장치들을 마련하고, 동시에 이들이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라는 존경심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한다.
중국은 현재 미국의 반도체법(CHIPS Act of 2022)때문에 최신 장비의 수입이 막힌 상황이다. 따라서 중국이 우리의 최첨단 1자리 수 나노 단위의 반도체 기술을 추격하는 것은 당장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천인계획(Thousand Talents Program, TTP)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반도체 인재들을 전세계적으로 흡수하고 있고, 이 분야의 석학들과 각국의 인재들을 어마어마한 금전적 보상으로 유혹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계약을 잘 이행하지 않고, 한번 중국으로 이직하면 업계에서 퇴출된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들의 유혹을 뿌리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비중국인 인재들 뿐 아니라 미국에서 활약하는 중국계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까지 적극적으로 데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또 중국이 <네이쳐> 등 권위있는 과학잡지에 정말 많은 반도체 및 AI관련 논문들을 출간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과연 기술 혁신을 이뤄내지 못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되는 금액을 반도체 연구에 쏟아붙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와 반대로 이미 반도체 파운드리나 팹리스 영역에서는 많은 힘을 잃었지만, 아직 반도체 공정용 소재 및 장비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강자다. 이후 다음 단락에서도 다루겠지만, 일본에서 공급하는 반도체 관련 소재나 도쿄일렉트론(TEL)과 같은 회사가 공급하는 장비가 없으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제조가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TSCM가 일본과 합작해 일본 현지에 수십조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고있다. 반도체 산업의 한물간 강자, 그러나 자신의 기반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일본은 다시금 이 분야에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수십년전 지금 우리나라가 차지했던 메모리 반도체 최강자의 자리를 점유한 경험이 있고, 아직 소재와 장비에서는 세계적인 리더인 일본이 반도체 세계의 경쟁에 도전장을 내민다면 그렇게 쉽게 무시할 만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또한 TSMC를 전면에 내세운 대만 역시, 더욱더 강한 정부 및 국민의 지지와 지원을 등에업고 삼성전자를 앞지를 차세데 나노 공정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대만은 압도적인 반도체 제조기술을 자신들의 정치적 외교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런 압도적인 기술과 이들을 대체할 존재가 전무한 까닭에 미국은 대만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고, 때문에 중국도 이들을 쉽게 침략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TSMC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반도체 생태계는 미디어텍(MediaTek)이라는 시스템 반도체의 또다른 떠오르는 강자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점차 퀄컴(Qualcomm)의 모바일용 AP 반도체의 점유율을 뺏으며 몇 년전에는 이 분야 1위의 기업이 되기도 했다. 또한 지금 GPU 및 NPU 반도체의 세계적인 리더인 NVIDIA의 젠슨 황(Jensen Huang)과 이들의 경쟁자로 떠오른 AMD의 리사 수(Lisa Su)역시 대만국적은 아니지만 대만계 미국인들이다. 이들이 자신의 근본 뿌리인 대만와 척을 지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이렇게 본다면 미국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리더들 중 두 명이 대만계이니, 사실상 이들이 존재하는한 미국도 대만을 중요한 정치적 동맹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스템 반도체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려는 우리의 잠재적 경쟁자들인 중국, 일본, 대만의 정부들과 여러 반도체 관련 회사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반도체 업계에서 다시금 도약하거나 점유율을 더욱 공고히 하기위해 국가 차원에서 매우 많은 예산과 정책을 지원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대통령은 작년 국가연구개발(R&D)에 배정한 예산을 대폭 삭감한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문에 많은 대학들이 대학원생들을 받을 수 없었고, 많은 연구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우리의 경쟁자들이 수십조원을 들여 산업의 쌀인 반도체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후퇴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자해도 모자를 판에 가장 예산을 줄이지 말아야할 부분에서 조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예산 삭감은 오히려 새로 연구를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추가적인 예산을 배정하되, 기존 연구를 하고 있던 이들에게는 삭감을 한 것이다.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결국 정권에 상관없이 이전에 연구를 해오던 석/박사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이미 하고 있는 연구들을 중단하고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게한다면, 정권이 바뀌는 시점에 또 그 연구들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릴 것인가? 작년까지 문제없이 이루어지던 연구들이 갑작스럽게 예산 부족으로 중단되게되면, 관련 인원들은 얼마나 허탈하고 속상할까?
이런식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없이 갑작스런 연구 예산 삭감이 이루어지면 과연 어떤 연구원이 정부를 믿고 계속 자신의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반도체 업계에서, 특히 우리가 아직 약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지원도 필요하고 또 그 지원이 지속적으로 오랜기간 이루어져야한다. 많은 과학, 공학 관련 연구들은 단기간에 빛을 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경제성을 가질만큼 발전시키고 성숙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또 그것을 현업 전문가들에게 이전해야하고, 반도체 생산전문가들이 그 기술을 현업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한다. 그 과정에는 반드시 금전적, 시간적 투자가 들어가야한다. 충분히 시간을 주고 연구의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그 와중에 실패가 나더라도 꾸준히 믿고 투자를 해 주어야 의미있는 성과가 나올 수 있다. 지금처럼 단기간에 성과를 뽑아내기에 급급해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진행되는 연구에 영향을 줄 정도로 예산을 줄여버리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그 어떤 혁신도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번 정부의 국가 중요 산업 연구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줄인 결정이 매우 아쉬운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전망은 초록빛
새로운 회사들의 등장
우리가 아직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는 약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시장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반도체 생태계를 돌아보면 생각보다 우리가 이뤄놓은 것이 많으며, 앞으로도 새롭게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엔비디아의 기술력과 큰 차이가 없다고 평가받는 퓨리오사(Furiosa)는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개척자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퓨리오사는 그들의 간판 제품인 워보이(Warboy)를 글로벌 AI 반도체 벤치마크 대회인 ‘엠엘퍼프(MLPerf)’에 참가해 시연했다(2). 업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대회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스탠포드, 하버드 등 유수 기업 및 연구기관이 매년 주최한다고 한다. 스타트업으로써는 유일하게 해당 대회의 추론 분야에서 자체 칩으로 결과 제출에 성공했다고한다. 여기서 엔비디아의 T4라는 NPU보다 이미지 분류(ResNet-50)와 객체 검출(SSD-Small) 처리 속도 면에서 앞섰다고한다. 엔비디아가 거액을 투자해 개발한 최신 NPU인 A2와 비교해 성능이 비등하다고 평가받았다. A2에 들어간 트랜지스터의 양과 반도체의 가격이 10배 이상의 차이가나는 것을 고려한다면 매우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이렇듯 우리안에는 비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를 수 있는 유망주들이 나타나고 있다.
퓨리오사 뿐 아니라 리벨리온(Rebelion) 같은 회사들도 수천억의 투자 유치를 받으며 AI 반도체 영역에서 엔비디아의 아성에 도전하려 하고있다. 이들은 아톰(ATOM)과 아이온(ION)이라는 인공지능 반도체를 내놓았다. 특이 아이온은 인텔이 만든 인공지능 반도체인 고야(Goya)의 성능을 뛰어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소모가 더 적으면서 성능이 더 좋아 가성비적으로 우수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엔비디아의 A100에 대해서도 금융 거래 테스트에서 10배 이상 더 빠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JP Morgan과 같은 세계적인 금융 기업에서 아이온을 구매하도록 이끌었다. 이렇듯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AI 반도체 팹리스들은 한국에서도 성장을 위해 꿈틀대고있다.
우리안에 존재하는 세계 최강자들
LG전자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처럼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지는 않지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회사다. 디스플레이 역시 실리콘으로 만들어지며, 특정 조건하에서 전자를 통하게한다는 점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반도체로 분류된다. 우리는 이미 LG의 OLED 기술을 통해 곡선으로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스크린을 만들 수 있는 지적 재산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디스플레이라는 또다른 반도체 영역에서 이미 세계 최강자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웨어러블 기기나 폴더블폰과 같은 야심찬 기술들이 세상에 나오고있고, 이러한 기술들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는한 디스플레이 시장의 전망역시 매우 좋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실리콘웍스라고 불렸던 LG의 반도체 자회사가 LX로 합병되면서 LX 세미콘이 되었다. 이 회사는 디스플레이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곳으로써 국내 시장에서는 이미 가장 큰 점유율을 보유중이다. 문제는 전 세계적인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에서 아직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것인데, 국내 최고 수준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활용한다면 이 분야에서도 우리에게 충분히 도약할 수 있는 승산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전력 반도체(화합물 반도체) 영역에서도 약자다. 기본적으로 실리콘은 150도 이상의 온도에서는 작동할 수 없기에 그 자체를 가공하는 것으로는 전장 반도체로써 부적합하다. 따라서 여러 다른 화학물질과 결합하여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대표적으로 2000도 정도의 온도를 견뎌낼 수 있는 실리콘과 탄소를 결합한 SiC(Silion Carbide)나, 1000도 정도의 온도를 견뎌내는 질소와 갈륨을 결합한 GaN(Galium Nitride, 질화갈륨) 등이 있다. 이들은 고전압에 강하기에 전압을 분배하는 전력 반도체로써 적합하다.
최근 삼성전자가 GaN 반도체를 생산할 것을 선언했고, SK의 자회사인 SK파워텍과 SK실트론은 SiC 반도체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다행이도 정부 역시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하기 위해 5년간 약 1000억원 이상의 연구 개발 지원금을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아직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의 존재감이 1% 정도로 미비하지만, 그것을 우리 기업들과 국가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잘 읽고 있으며 어디를 미래 먹거리로 삼아야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센서 역시 매우 먹거리가 많은 시장으로 볼 수 있다. 이 분야의 반도체는 보통 MEMS(Micro Electromechanical Systems)이라 불리는데, 아주 작은 크기의 전자기계라는 뜻이다. 마이크로 단위의 작은 기계라서 반도체 공정을 이용해 만들어지고, 반도체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니 반도체로 분류된다. 특히 자율주행차가 대세가되는 자동차 시장에서 센서에 대한 수요가 매우 크다. 주변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다수의 센서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이 센서 시장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술장벽도 낮지 않아 신규 회사가 진입하기도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 분야에서는 스위스의 ST Micro, 독일의 Bosch, 미국 InvenSense가 강자로 알려져있다. 이 회사들이 대부분의 특허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센서가 필요한 다수의 자동차관련 회사들은 대부분 이 회사들의 센서를 구매해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도 대부분의 센서를 이들 회사에서 구입하거나 로열티를 지불하고 개발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희소식이 있다. 2000년에 설립된 국내 센서회사인 Micro-to-Nano가 독자적인 MEMS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비로소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했거나 점유율을 늘리지 못했던 디스플레이 반도체와 같은 아날로그 반도체, 전력 반도체와 같은 화합물 반도체, 그리고 센서 반도체에 대한 기초 기술을 모두 보유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른 AI 반도체인 NPU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제 기반을 닦았으니 이 제품들을 충분한 품질로 상용화하여 조금씩 전세계에 판매량을 늘려나가면 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고 갈길이 멀지만, 우리의 반도체 생태계와 앞으로 늘어날 여러 반도체 시장의 규모를 고려하면 충분히 긍정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현재 NPU반도체에 들어가는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인 HBM과 PIM의 선구자이며 리더이다. 하이닉스는 2000년대 후반 HBM을 개발하면서도 수익이 나지 않고 돈만 먹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고 한다. 회사가 인수 위기에 놓였던 2012년 SK에 그룹이 인수되고 나서 다행이도 이 신개념 반도체의 개발을 지지받을 수 있었다고한다. 그러나 엔비디아를 필두로 인공지능 반도체 시대가 20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최근 그 투자의 성과가 뚜렸하게 나타나는 중이다. 희소식으로 HBM 반도체의 수요는 앞으로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고하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면 SK하이닉스는 계속해서 기록적인 매출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는 후발주자로써 SK하이닉스의 HBM 기술력에 조금 뒤쳐졌지만, 그 차이가 계속해서 좁혀지고 있다고한다. 이 두 기업들 이외에 마이크론도 HBM 시장에 진입했지만 기술력이 상당히 차이가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금 HBM 반도체 시장에서 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전체 점유율의 8할에서 9할 이상을 장악한 상황이며, 이 상태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HBM 반도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는한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HBM에서는 하이닉스에 뒤쳐졌지만, 하이닉스가 HBM에 집중하는동안 PIM이라는 또다른 유형의 인공지능 메모리 반도체 기술에 매진했다. PIM은 GPU나 CPU처럼 순수하게 메모리로써의 저장 기능 뿐만 아니라 연산 기능도 장착했기에 엄밀히 말하면 메모리 반도체이면서도 시스템 반도체로 볼 수 있다. 다만, 기존 연산 장치처럼 연산에 특화되었다기보다는 일부 연산기능을 지원해 기존 연산용 반도체의 일을 덜어주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전에 없었던 기존 메모리 반도체대비 확실한 차별성을 의미하기에 앞으로 상당한 수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밖에 배운 흥미로운 것들
트랜지스터 발전사
삼성전자의 최근 위기를 초래했던 2022년 “GOS(Game Operation Service)”에 대해 조사하면서 트랜지스터의 간략한 발전사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트랜지스터(Transistor)란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는 소자로써 쉽게 말하면 스위치로 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트랜지스터는 MOSFET(Metal-Oxide Semiconductor Field Effect Transistor)인데, 구조상 전자가 드나드는 문이라 볼 수 있는 게이트(Gate)와 전자가 흘러다니는 길이라 볼 수 있는 채널(Channel)로 구성되어있다. 반도체가 마이크로를 넘어 나노영역으로 점점 크기가 작아지면서 채널의 길이도 짧아졌는데, 이때 양자역학(Quantum Physics)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전자가 벽을 뚫고 나가는 등 성질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지 못하게되면 반도체로써의 의미가 없어지기에 이는 반드시 해결되야하는 문제였다.
이후 이 문제는 채널의 길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게이트가 닿는 면적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게이트가 채널을 커머하는 면적을 넓히면 게이트를 둘러싸는 형태가 되는데 이렇게되면 전자가 채널을 빠져나갈 수 없게되리라는 이론이었다. 이 방법으로 전자가 채널을 벗어나지 못하게하는데 성공했고, 이러한 형태의 MOSFET 중 가장 많이 활용되었던 것이 3개의 접촉면을 가진 FinFET(Fin Fiend Effect Transistor)였다. 인텔(Intel)에서 2011년 22나노 반도체를 양산하면서 최초로 개발했고, 이는 몇 년간 인텔을 메모리 반도체의 왕좌로 군림하게했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반도체 업계에서 인텔의 왕좌는 오래가지 못했다. 10나노 이하 반도체까지 반도체의 집적화가 진행되면서 더 이상 3개의 단면으로는 전자의 흐름 제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접촉면을 4개로 늘린 기술이 등장했는데 바로 삼성전자가 개발한 GAA(Gate-All-Around)다. 2015년 삼성전자 김기남 사장은 7나노까지는 기존 FinFET의 활용이 가능하겠지만 그 이후는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래서 단면을 하나더 늘린 반도체를 개발하는데 집중했고 2022년 6월 세계 최초로 GAA로 3나노 반도체를 양산하는데 성공하게된다. 그에 반해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 회사인 TSMC는 여전히 FinFET을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더 낮은 2나노의 반도체를 GAA로 생산하려는 시도를 하고있지만, TSMC는 아직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결국은 TSMC도 2나노 반도체에서 삼성을 견제하기위해 GAA아니면 FinFET을 대체할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야할 시기가 분명히 올 것이다. 이 부분에서 삼성전자가 앞으로 TSMC에 비해 기술력 우위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경계가 사라지는 미래
현재 엔비디아가 선점하고 이에 도전하는 퓨리오사 등이 전력으로 매진하는 NPU는 앞으로 우리가 반드시 선점해야할 분야이다. 인간의 뇌를 모사해 만들어진 이러한 뉴로모픽(Neuromorphic) 반도체는, 기존의 “저장"과 “연산"을 분리해 처리하는 반도체와는 다르게 이 둘을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으면서 처리하는 방식을 택한다. 마치 인간이 학습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러번 연습을 하면서 실수를 하더라도 결국 교정해 올바른 자세나 방식을 체득하는 것처럼말이다. 이러한 반도체에서는 저장과 연산이 동시에 이루어져야하므로 기존 메모리 반도체가 담당하는 기능과 CPU등 시스템 반도체가 담당하는 기능이 한데 어우러져야한다.
만약 이러한 반도체가 대세가되면 기존 메모리와 비메모리 시장을 상당부분 무너뜨려 기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강자들이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미래를 막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반도체 회사들이 NPU 반도체 개발에 반드시 뛰어들어야하는 미래가 올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발빠르게 이에 대응할 수 있어야한다. 메모리의 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더 이상 자신들의 기존 시장 점유율로 만족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하이닉스가 HBM이라는 NPU를 위한 메모리 반도체를, 당장은 큰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연구 개발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TSV(Through Silicon Via)라는 공정 기술을 통해 기존 소자들의 테두리를 구리 배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아닌, 소자들을 쌓아 구멍을 뚫어 구리를 충전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이렇게하면 전력 공급과 신호 전달을 큰 손해 없이 가장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수행할 수 있고, 또한 소자들의 집적도를 크게 높일 수 있어 약 100조개에 달하는 뉴런의 시냅스를 모사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는 앞으로 다가올 NPU관련 반도체를 개발 및 생산하는데 필요한 기술력을 축적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경제적 무기를 넘어선 정치적 비기, 반도체
TSMC는 워런 버핏의 선택을 받았다. 그 만큼 전세계적인 투자 전문가들도 TSMC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내다 보았다는 것이다. TSMC와 삼성전자는 사실 기술력에서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TSMC는 결정적으로 파운드리회사로써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를 모토로한다. 따라서 고객사가 제조를 맡기더라도 기술 유출의 가능성이 적다. 또한 그렇게 번 돈을 다시 ASML같은 우수회사의 장비를 구매하고 라인을 증설하는데 재투자할 수 있다. 설계와 제조를 모두하는 종합반도체(IDM)회사인 삼성전자가 불리한 이유다.
삼성전자는 고객에게 기술 유출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본질적으로 상대적으로 우수한 기술력을 갖추더라도 TSMC를 파운드리에서 밀어내는 것이 쉽지않다. 또한 파운드리는 삼성전자의 메인이더라도 그룹 사업의 일부이기에 모든 수익이 거기에 투자되지 못한다. 여기에 TSMC가 파운드리에서 내는 수익과 삼성이 내는 수익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당연히 파운드리에만 집중하고 순수익도 더 큰 TSMC가 파운드리에 더 많은 돈을 재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은 굳이 깊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TSMC와 대등한 생산 기술을 가지면서도, 파운드리에만 집중하는회사가 국내에 나타나지 않는한 그들의 파운드리 점유를 뺏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TSMC가 정책적으로 삼성전자에 우위를 가져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TSMC는 주주가 타이완 정부이기에 주요 반도체 시설은 대만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 전략 산업으로써 TSMC의 파운드리는 전세계의 반도체 생산의 심장이기도하지만 그 심장이 위치하는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보호하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TSMC의 반도체 생산 능력이 중국으로 유출되고, 중국이 자신들이 필요한 반도체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시간이 오는 순간 TSMC를 더 이상 그냥 온전히 둘 이유가 없어진다. 그 순간이 오면 미국을 위시로한 반도체 동맹은 공급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며, 중국은 반도체 생산의 키를 쥔 강자가되어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한 크나큰 위협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미국을 중심으로한 전세계 반도체 권력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될 수 있다. TSMC는 단순히 대만 경제의 한 축일 뿐 아니라, 미국 등 다른 반도체 강국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보호할 수 밖에 없는 정치적 장치이기도하다.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정확히는 그 것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그 엄청난 경제적 중요성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중대한 비기가 된 것이다.
파운드리의 거대한 산맥 TSMC
TSMC역시 삼성전자의 힘겨운 추격을 보고만 있지는 않고있다. 이들은 내년 정도에 1나노 반도체 생산에 도전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실리콘을 비스무트(Wismut)라는 물질과 결합한 새로운 2차원 소재를 개발했다. 기존 2차원 소재가 가지고 있던 높은 저항의 문제를 해결해 저항은 낮추고 전류의 이동성을 높였다. 보통 반도체 업계에서 신기술 개발 후 1~2년 정도 완성도를 다듬어서 발표를 하는 관행이 있는 것으로 비춰보았을 때 적어도 이들은 2010년대 말에 이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추측된다. TSMC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들의 1나노 양산 시설을 북부 타이완에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 역시 쉽지는 않지만 TSMC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중이다. 2027년 정도에 1.4나노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고있으며 이미 aBN이라는 2차원 소재중 가장 전류 이동성이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 물질을 개발해 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두 회사모두 1나노를 안정적으로 양산하는 것은 단기간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술이 안정화되고 양산까지 가려면 2029년에서 30년 정도 되어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물론 TSMC를 이길 수 있는 장담은 어디에도 없지만, 성공한다면 우리가 기존에 약했던 NPU 관련 반도체와 아날로그 반도체, 화합물 반도체, 센서 및 모뎀 반도체 시장에서 큰 승리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의 중요성, 패키징(Packaging)
축구에서는 아무리 과정이 좋아도 끝에 골을 넣지 못하면 결과를 낼 수 없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아무리 처음 시작과 과정이 좋아도 그 페이스가 그대로 유지되지 못하면 마지막에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마지막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전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저평가를 받거나 그 노력에 대한 제대로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반도체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를 포장하여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상품을 포장한다는 의미인 패키징(Packaging)은 어찌보면 전체 공정에서 가장 간단하고 의미가 떨어져 보이지만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는 마무리 과정이다. 모든 상품이 알맞게 포장되어 주변 환경으로부터 보호된체로 납품이 되는 것처럼, 반도체 역시 생산이 마무리된 그 상태 그대로 고객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충격에나 영향에서 보호된 상태로 나가야한다. 일반적으로 반도체를 생각할 때 검은색 사각형의 물질로 보호된 상태를 상상한다. 이 검은색 사각형 보호막이 EMC(Epoxy Mold Compound)라는 물질로써 반도체를 외부 충격이나 스크래치로부터 보호한다. 여기서 밖으로 뻗어나오는 다리 부분은 리드 프레임(Lead Frame)이라는 것으로써 반도체를 기판과 단단히 연결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필자가 잠깐 휴대폰 렌즈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을 때가 기억난다. 당시 대학생때 여름 알바를 찾던 중 인근 휴대폰 렌즈 공장에서 구인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라인안에서 디스플레이용 반도체의 일반적인 생산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렌즈가 마지막에 생산을 끝내면 검수하는 라인으로 전달되어 불량을 검출하는데, 거기서 정말 조심스럽게 렌즈를 다룬다. 방진복을 입고 장갑을 항상 착용하며 손톱은 반드시 짤라야한다. 손으로 만지다가 혹시라도 스크래치를 내면 불량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청 조심스럽게 렌즈를 다루며 검사를 진행한다. 생산이 끝나도 포장된 상태가 아니기에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다룰 수가 없는 것이다. 한번은 누군가가 그 렌즈에 스크래치를 내서 관리자에게 꾸중을 듣는 모습을 보기도했다. 그만큼 반도체는 생산이 끝났다고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설명 불량이 아니라고해도 아직 포장된 상태가 아니기에 포장되어 고객에 전달될때까지 반드시 조심히 다루어야하는 제품이다. 그렇기에 렌즈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공정을 거치고 스크레치나 파손의 위험성이 더 큰 실제 반도체 칩들은 어떻겠는가? 당연히 포장이 잘 될때까지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반도체 패키징 과정을 통해 단순히 외부 충격에서 보호하고 품질을 유지하는 것 뿐 아니라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이 마무리 공정의 중요성은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발열을 줄이고, 전력 공급 및 신호 전달을 개선할 정도로 패키징이 반도체 성능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난 것이다. 이는 반도체가 단순히 크기가 작아지는 것으로 성능을 개선하기에는 상당한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 크기를 작게 만드는 것은 이전과 같은 비용 대비 효율을 기대할 수 없게되었다. 그래서 그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
삼성전자와 TSMC는 계속해서 미세화에 투자하면서도, 패키징을 통해 반도체 품질을 개선할 방법을 계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세화 공정에서는 TSMC에 앞서지만, TSMC는 반대로 패키징 기술력에 우위를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FOPLP(Fan-Out Pannel-Level Packaging)방식을 도입했고, TSMC는 FOWLP(Fan-Out Wafer-Level Packaging)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이 중에서 FOWLP가 먼저 개발되어 조금 더 안정화된 기술로 평가받고 있는데, 애플이 TSMC와 협력을 선택하는데 있어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FOPLP는 삼성전자가 TSMC의 패키징기술에 도전하여 만들어낸 기술이다. TSMC의 패키징 기술이 우위라는 것은 애플이 설계한 AP의 성능이 삼성전자에게 맡겼을 때보다 훨씬 더 우수했다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TSMC가 양산한 A10은 삼성전자가 동시대에 양산한 Exynos 8890과 비교해 싱글코어(Single Core, AP에서 실제 연산을 수행하는 부품을 한 개만 쓰는 방식)기준 두 배 이상이었다.
FOWLP는 둥그런 웨이퍼를 사용하고, 패키지 공정을 아직 거치지 않는 완성형태의 반도체인 다이(Die)가 웨이퍼 위에 남아있는채로 몰딩(Molding)해 다이를 에폭시(Epoxy)로 감싸주는 공정이다. 이때 몰딩 소재를 웨이퍼의 크기만픔 펴 바르는데, 이렇게 하면서 다이를 몰딩 소재 위로 옮겨 웨이퍼를 제거하게된다. 이후 구리를 재배선하거나 솔더볼(solder ball)을 설치해 반도체별로 절단하는 공정을 거쳐 완성한다. 구리를 재배선하는 이유는 흐트러진 배선을 바로잡기 위함이고, 솔더볼은 기판과 반도체를 연결해서 전력을 공급하고 신호를 전달한다.
반대로 FOPLP는 웨이퍼에서 다이를 떼어내고 그 크기에 맞춰 뚫어놓은 패널(인쇄회로기판인 PCB로 이해하면 쉽다)의 네모난 구멍 속에 넣고 몰딩한다. 이후 FOWLP와 같이 솔더볼(solder ball)을 설치해 반도체별로 절단하는 공정을 거쳐 완성한다. FOWLP와는 달리 재배선을 하지 않는다. 솔더볼 공정과 각각의 반도체를 크기에 맞춰 자르는 공정은 FOPLP에서도 이루어진다.
Fan-in은 솔더볼이 다이크기를 넘지 않을 만큼만 설치하는 것을 말하고, Fan-Out은 다이크기를 넘어갈 정도로 설치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TSMC모두 전력 공급과 신호 전달을 원활하게 하기위해 Fan-Out을 택했다. 사실 Fan-Out을 처음 도입한 것이 TSMC이니 삼성전자는 그 흐름을 따라왔다고 볼 수 있다.
FOWLP는 웨이퍼를 제거하는 만큼 반도체의 두께와 부피를 크게 줄이며 발열을 최소화한다. FOWLP는 반도체가 내부 패널을 거치지 않고 전자장치의 기판과 바로 연결되어 전력 공급 및 신호 전달에도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다. 비록 기본 판형이 웨이퍼 크기의 원형이기에 패널방식에 비해 버려지는 공간인 Dead Zone이 발생할 수 밖에 없지만, FOPLP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량은 적어도 품질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FOPLP는 패널에 생산하기에 Dead Zone이 거의 없고, 단단한 패널 위에 작업하므로 여러 소자들을 겹겹히 쌓을 수 있어 집적도를 높이는데 유리하다. 그래서 고성능 을 요하는 반도체일수록 이 방식이 유리하나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더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다이를 웨이퍼에서 떼어내서 패널에 옮기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패널을 사용하므로 열을 받으면 구부러지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CPU/AP등 중앙 연산 처리용 반도체를 생산하는데 있어서는 적합하지 않은 기술이다.
결론적으로 CPU/AP등 시스템 연산처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고, 이것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식이 FOWLP이기에 TSMC가 선택을 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도체의 집적도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패키징의 방식 차이 때문에 품질의 차이가 발생한다면, 패키징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삼성전자역시 자신들의 패키징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파악하고 FOWLP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올해 선보이게될 4나노 반도체인 차세대 Exynos 반도체에서 과연 삼성전자의 패키징 기술 발전이 어느 정도 였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HBM을 양산하는데 있어 FOPLP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해당 패키징 공정을 장기간에 적용 및 발전시켜 다시금 파운드리내에서 점유율 증가를 노려볼 계획이다.
SiP(System in Package)와 SoC(System on Chip)
반도체 업게에서 일하다보면 이 두 용어를 많이 듣는다. 그런데 나는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각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SiP는 시스템을 패키지 단위로 구현하는 것으로, 여러 기능의 반도체를 패키징을 통해 하나로 묶는 방식이다. GPU, CPU, 메모리를 하나로 묶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SoC는 SiP에서 조금 더 발전된 개념으로써 하나의 반도체안에서 전체 혹은 일부 시스템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GPU, CPU, 메모리를 하나의 반도체에 모두 구현하는 것이다.
SoC는 SiP보다 기술적으로 어렵지만, 구현이 가능하다면 공간활용과 전력 소모에 강점을 가질 수 있다. 대부분의 AP가 이러한 이점 때문에 SoC로 만들어진다. 애플의 M칩들, 퀄컴의 SnapDragon, 삼성의 Exynos가 대표적인 SoC AP 칩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SoC의 기술적 난이도와 생산 비용 때문에 SiP로도 만들어지는 AP칩들도 아직 많다.
파운드리를 포기하지 말아야하는 이유
삼성전자가 IDE라는 태생적인 한계때문에 TSMC와 현실적으로 파운드리 경쟁이 어려워 2인자에 만족하자는 의견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2인자에 만족하자는 말은 경쟁자를 앞서기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이 말은 그렇게 이 분야의 혁신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책은 이러한 생각이 매우 위험하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로 앞으로 인공지능으로인해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제까지 쌓은 제조 및 생산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야 더욱 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책은 인텔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1990년대 일본의 반도체 굴기를 탐탁치 않아했던 미국이 한국에게 반도체 기술을 원조했다고한다. 이때 인텔이 큰 역할을 했다고하고, 삼성전자가 그때 상당한 수혜를 보았다고한다. 미국은 설계는 자신들이하고 환경 오염을 야기하는 제조는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 넘기는 것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이 없었다. 이에 대해서 반도체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든 무어(Gordon Moore)는 상당히 염려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점 IT 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을 필두로한 새로운 반도체의 시장이 열렸다. 또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인해 반도체의 공급 부족이 불러온 여파, 그로인해 TSMC같은 독보적인 파운드리가 전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가지게 된 영향력을 확인한 후에는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도체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이 곧 국력이자 정치적 비기임을 깨달은 미국은 중국으로하여금 자신들을 쫓아오지 못하게하기위해 반도체관련 법안을 제정해 동맹국들이 따르도록 요구했다.
인텔은 다시 ARM과 파트너쉽을 맺으며 파운드리로써 존재감을 발휘하려한다. ARM의 설계 능력과 인텔의 생산 노하우가 합쳐지면 삼성전자와 TSMC에 강력한 도전이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문제는 인텔의 생산능력이 삼성전자와 TSMC를 누를 수 있냐는 것이다. 아직 많은 전문가들은 인텔의 생산기술이 삼성전자와 TSMC를 능가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세계의 모든 팹리스들은 삼성전자와 TSMC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가된다. 파운드리는 팹리스가 없으면 안되고 스스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팹리스도 파운드리가 없다면 반도체를 실물로 볼 수 없다. 그런면에서 새로운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팹리스와 실제 반도체의 생산을 할 수 있는 파운드리를 운영할 능력을 가진 한국은 매우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생산 기술을 보유하면 TSMC처럼 그 능력 자체가 국가에게 상당한 정치적 힘이 된다. 그러므로 생산 기술능력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적 필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환경 오염과 같은 부가적인 문제는 계속 연구하면서 개선해나가야한다. 중요한 것은 생산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 역시 반도체를 설계하는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므로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하는 애플의 혁신
“발명(Invention)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고, 혁신(Innovation)은 세상에 이미 있는 것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혁신을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기업이 애플(Apple)이다.”
오마이스쿨의 대표 이사이자 강사인 최진기님이 TvN <어쩌다 어른>의 한 에피소드에서 말한 내용이다.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아니 역사상 가장 가치가 높은 기업은 단연 애플이다. 애플은 그 자체가 전자 IT기기의 혁신의 상징이며, 지금 인류가 사용하는 현대적인 컴퓨터 및 스마트폰을 가히 가장 먼저 발명해 낸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쓰기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의 시대는 애플이 1997년 애플 II(Apple 2)를 세상에 내놓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컴퓨터 모니터와 본체, 그리고 키보드가 분리되어 있었고, 그것을 일체화시켜세상에 내놓은 수작이었다. 이 애플 II를 통해 애플은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약 10년 전에 애쉬튼 커쳐(Ashton Kutcher)주연의 영화 잡스(Jobs)를 본 기억이난다. 애플의 전설적인 CEO였던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다룬 영화였다. 영화에서 다룬 내용에 의하면 잡스는 철학과 명상에 매우 심취한 사람이었다. 그의 그러한 성향은 그가 필요없는 것을 제거해 최소한의 요소로 최대한의 효율을 이루려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로 살아가게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다. 그는 틈만나면 생각에 잠겼고, 현재의 애플 제품에 만족하지 않고 거기서 “어떻게해야 사람들이 더 편하게 느끼고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곰곰히 항상 생각했다. 삼성 등 경쟁사들이 무언가 새로운 기술을 더하고 제품을 화려하게 만들 때, 잡스는 어떻게하면 “필요한 것을 없앨 것인가”에 집중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어떻게하면 “최대한 서로 다른 것들을 쉽게 연결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에 골몰했다.
잡스는 그가 연설을 맡았던 스탠포드 졸업식에서 “점들을 연결하는 것(connecting the dots)”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열정과 뛰는 가슴을 따라 살면, 서로 관련이 없어 보였던 사건과 경험들도 결국 하나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대학 중퇴전 전공은 인쇄문자학(Typography)였지만, 이 것이 바탕이 되어 훗날 컴퓨터에서 여러가지 폰트(font)를 지원하는 기능을 고안해내게된다. 기존 MP3들이 모두 버튼식을 활용할 때, 그는 미학적으로 깔끔한 디스플레이와 사용자가 조작하기 편리한 터치 기능을 도입해 버튼을 최소화하여 세상에 아이팟(ipod)을 선보였다. 그러면서도 사용자가 본인들의 플랫폼을 사용하도록 아이튠즈(itunes)라는 아이팟 전용 음원사이트를 만들어 음악을 판매했고, 그 수익을 아티스트와 공유하도록 했다. 사용자에게 편의성을 주고 필요없는 것을 빼면서도, 자신들의 생태계에 더욱 의존하도록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유기적인 연동을 꾀했다. 개인용 PC에서도 계속 제품을 단순화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 결과 모니터와 본체를 일체형으로 만들어 전체 부피를 줄인 아이맥(iMac)이 등장했다.
이 모든 혁신의 완전체는 아이폰(iPhone)이었다. 그동안 터치패드로 동작하며 음악을 재생해주는 아이팟, 그리고 작은 태블릿 컴퓨터인 아이패드(iPad), 마지막으로 여기에 전화와 메시지 기능을 추가했고, 자신들의 소프트웨어인 MacOS를 단순화 시킨 iOS를 탑재한 애플의 걸작이자 세상에 나온 첫 스마트폰이었다. 2007년 잡스와 애플이 야심차게 준비한 이 기기는 발표 당시 세간의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이후 몇 번 성능이 개선되면서 디스플레이가 훨씬 나아진 iphone 4부터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2009년에서 2010년 정도였는데 이때부터는 거의 모든 사람이 대중교통이나 직장, 학교에서 틈만나면 스마트폰을 보는 현상이 확연이 자리잡혔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 손안에 언제 어디서든 터치 방식으로 전화와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애플이 그동안 쌓았던 쓸떼없는 것을 버리고 대신 확실하게 필요한 것만 취하는 미니멀리스트 전략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계속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큰 그림에서 자신들의 모든 제품을 연동할 수 있게끔 생태계를 다듬어나간 전략은 애플 II, 아이팟, 아이맥, 아이패드, MacOS, iOS, 아이폰 등의 연속된 혁신적이고 세련된 제품군을 형성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아예 연결선을 없애버린대신 주변 소음을 차단하는 무선이어폰 에어팟(Airpod)이 완전히 대세가되어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것을 귀에 꽂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정도다. 애플은 이렇게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고 쉽게 사용할지 고민했고, 그 결과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덕지덕지 더한 타사의 제품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었다.
이제 이러한 미니멀리스트 및 생태계 연결 전략은 애플의 상징처럼 여겨져 다른 이들이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애플만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이제 사과를 한입 깨문 그 로고만 박혀있으면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져도 무조건 다른 것보다 잘 팔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길 정도다. 마치 사람들이 다른 커피가 있어도 스타벅스를 찾는 것처럼, 애플은 그들만의 팬덤을 구축했다. 이것은 이전과는 다른 그 어떤 IT회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이다. 마치 아이돌가수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그 가수의 일거수 일투족이 상품이 되는 것처럼, 애플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내놓는 모든 상품을 구매하도록 자신들의 브랜드에 충성심을 갖게하는데 성공했다. IT회사로써는 전무후무한, 그리고 앞으로도 나오기 쉽지 않을 성취를 이루어냈다.
애플은 “가장 뛰어난 기술”이 반드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과 연계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일찍 깨달았다. 오히려 그것보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중 사용성과 편의성을 개선해 내놓는 것이 훨씬 더 사람들의 호의를 얻기 용이하다는 것을 알았다. 최진기 강사가 이야기한 것처럼 “발명은 기술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오지만, “혁신은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온다. 혁신을 이루기위해서는 기술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편리한 것, 그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개선한다면 그 누구도 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고, 그 누구도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애플이 그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애플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스마트워치인 애플 워치(Apple Watch)를 출시했고, 이제는 이 기술들을 총합하여 애플 카(Apple Car)라는 것으로 자동차 산업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앞으로 자동차가 자율주행화되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할일이 없어진 운전자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애플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쌓아온 생태계와 역량으로 애플의 다른 제품과 쉽게 연동하며,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자율주행차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Apple TV, iTunes 등 애플이 제공하는 콘텐츠를 애플 특유의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로 경험할 수 있다면 아마도 많은 애플 매니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애플이라면 이 시장에서 지금까지 자신들이 쌓아온 포트폴리오로 충분히 매력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자율주행차 시장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안에서, 애플은 자신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애플이 이러한 시장을 넘보는데 있어 당연히 그에 맞는 반도체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애플에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제공하고 있으며, 아이폰이 출시되면 그 것을 구성하는 부품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한국산들이다. 애플이 자율주행차를 양산하게 된다면 그 또한 엄청난 수요의 반도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미 애플에게 안정적으로 반도체를 공급해온 한국에게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다. 애플은 우리의 경쟁자임과 동시에 고객사다. 이 거대한 회사가 앞으로 IT 세계에 몰고올 반도체 수요를 우리가 놓치지 않도록 메모리와 비메모리 모든 영역에서 기술력을 쌓아나가는 노력을 계속해야한다.
헨리 포드(Henry Ford)의 전기 대중화
“철강왕"이라 불리는 헨리 포드는 오늘날 미국의 거대 자동차 기업인 포드(Ford)의 설립자이다. 그러나 사실 그가 칭송받는 이유는 포드의 설립보다도 전기를 실질적으로 생산시설에 활용했던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동차의 대량 생산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갖출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업적 때문이었다.
본래 많은 이들은 전기의 발명을 19세기 후반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과 니콜라 테슬라(Nicola Tesla)의 업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가 본격적으로 인터넷이 20세기말 발명되었어도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해 21세기 초에 와서야 인터넷이 대중화 된 것처럼, 산업용 전기의 대중화는 그만큼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1882년 에디슨이 세계 최초의 전기 발전소로 평가받는 펄 스트리스트(Pearl Street)발전소를 세웠다. 그러나 이 발전소가 세워지고도 30년 가까이 미국에 있는 모든 기계 중 오직 소수만이 전기를 활용해 구동했을 뿐이다. 이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 헨리 포드로, 그는 1913년 전기구동형 컨베이어 벨트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여 자동차 생산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기존에 반나절은 걸리던 자동차 1대의 생산 시간을 100분 이내로 끝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산업용 전기 확산의 발판이되었고, 이후 많은 공장 시설들이 전기를 통해 구동되는 생산 시설을 개발 및 도입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스스로도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
모든 기술은 성숙기를 가진다. 아이가 태어났다고해서 끝이 아니듯, 기술 역시 탄생 후에 그것이 다듬어지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기술을 발명해낸 사람도 물론 칭송받지만, 그 기술을 인간이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혁신가역시 그만큼 혹은 더 높게 평가 받는다. 아이폰이 만들어질때도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와 같은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도 그러한 전화기가 너무 비싸고 키보드도 없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애플은 아이폰을 터치스크린 만으로 별도의 버튼없이 모든 것을 가능케 만들었고, 그렇게해서 공간효율성을 극대화해 디스플레이가 기기의 거의 모든 면적을 차지하게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이 시장에 나온뒤 어땠는가? 지금 이 세상에 길을 걸어가면서,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면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폰이 매우 크게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많은 대중들도 전기자동차가 별로 메리트 없는 산업이라고 평가했지만 그 기술이 성숙하고 전기차를 대중화시킨 테슬라(Tesla)의 등장으로 그 평가는 완전히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사실 대중들도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는 반증이다.
결국 이런 모호한 상황에서 대중들의 무관심 혹은 부정적인 시선을 뚫고 성공한 제품이나 회사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혁신을 고집하고 계속 그 싹이 나무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갔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이 성숙하고 시장의 트렌드가 바뀌면 산업의 방향이 달라진다,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은 대중의 기호가 달라진다는 뜻이기도하다. 모든 산업은 결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이 변하는 동안 자신들의 혁신을 멈추지않고 매진한 회사들이 결국 장기적으로 큰 성공을 경험했다. 당장에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혹은 오히려 실패를 맛보더라도, 다른 이들의 비난과 조롱에 굽히지않고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큰 성취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고,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
2016년 3월 구글의 딥마인드에서 만든 바둑 인공지능인 알파고(AlphaGo)가 바둑계 최고 선수였던 이세돌 9단에게 도전해왔다. 5일 동안 5국을 두는 방식으로 승부를 보았고, 결과는 5전 4승 1패로 알파고의 압승이었다. 1996년 IBM의 딥블루(DeepBlue)라는 체스 인공지능이 당시 세계 체스 챔피언으로 평가받던 러시아의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를 2승 1패 3무로 꺾었을 때 이후 두 번째 충격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카스파로프와 호각으로 싸우기는 했지만 딥블루는 압승이라고 할 수는 없는 전적이었다면, 이번 알파고의 바둑 대국은 단 1번만 패하고 나머지를 모두 이겼다는 점에서, 또 바둑이 체스보다 경우의 수가 더 복잡한 게임이라는 점에서 충격이었다.
당시 중국계 프랑스 바둑기사였던 판 후이(Fan Hui)는 알파고의 수를 두고 “인간이 둘 수 없는 정말 아름다운 수"라고 평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수 있었던 원인을 많은 사람들은 알파고가 수많은 대국을 두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대국 정보를 데이터로 학습하며 스스로 처벌하고 보상하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해 이루어냈다고 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그러한 학습이 가능했는지, 인간이 과연 그것을 모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았다. 구글은 인공지능과 인간이 학습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기에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거기에서 공통된 패턴을 찾아내는데 특화되어 있지만 인간은 인공지능만큼 실시간으로 짧은 순간에 그 많은 정보를 기억하거나 처리할 수 없다. 인간은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일상에서 무언가 색다른 점을 찾아 거기에서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창의성”에 의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주체이지만,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거기에서 찾아내는 패턴을 정리하는 “연산능력"과 “정확성”으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반도체를 설계할 때도 인공지능을 도입했다. 2021년 구글이 <네이쳐>에 발표한 논문(6)에 따르면 반도체를 설계시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가 주어진 공간에 필요한 모든 소자를 알맞게 배치하는 것인데, 이 것을 인공지능을 활용해 여섯 시간만에 완료했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반도체 설계 작업 중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수 백만개에 달하는 각 소자의 특성은 물론이고, 주어진 물리적 공간내에서 가장 연결성과 호환성이 좋으면서도 전기적 특성을 최적화해 배치해야하기 때문이다. 구글은 강화학습의 개념을 이때에도 활용하여 반도체 설계의 소재 배치를 게임으로 설계했다. 여러번 반도체 소재배치를 반복하면서 반도체의 전력 소모, 연산 능력, 미세화 등에서 가장 최적의 합을 찾아낼 수 있는 배치를 찾아내도록 했다. 이전보다 더 좋은 합을 찾아내면 보상을, 그렇지 못하면 처벌하는 방식을 통해 배치 시나리오를 여러번 시뮬레이션하면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게임처럼 작업을 구성한 것이다. 이렇게하니 기존에 인력을 들여 수천 시간을 투자해야했던 작업을 단 여섯 시간만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인공지능이 최종적으로 설계한 반도체는 인간이 훨씬 더 많이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기존 반도체와 비교해 여러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수천시간을 단 한 자리 수의 시간으로 바꾸어버리면 최소 몇 백배의 시간을 아끼는 것이니 당연히 매력적인 솔루션일 수 밖에 없다. 구글은 실제로 이러한 반도체 설계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출시한 4세대 TPU(Tensor Processing Unit)이 이러한 인공지능으로 설계되었다. 알파고가 바로 이 TPU를 사용했는데, 그때는 1세대였고 지금은 4세대까지 왔으므로 더욱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더욱 발전한 인공지능 반도체를 인공지능 스스로가 설계했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
이렇게 정확성이 필요한 작업은 AI가 인간을 태성적으로 이길 수 밖에 없다. 내가 구구단을 외우는데 몇 시간이 걸리는데, 999 x 999를 단 몇 초만에 외울 수 있는 존재를 모사할 수 있을까? 아무리 노력한다고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의 뇌는 그런 것에 특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날갯짓을 해봐도 날 수 없는 것과 같다. 단순히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이 태어난 형태과 인공지능이 태어난 형태가 다르고 서로 물려받은 것이 다른 것이다. 즉, 인간은 절대로 인공지능의 연산능력과 정확성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간이 잘 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하는데 집중해야한다.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시도끝에 여러 다른 물질을 다른 형태로 가공해 전구에 쓸 수 있는 필라멘트용 물질을 발견해냈다. 에디슨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궁금한 자연 현상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파고드는 열정이 있었다. 자신의 주변을 호기심을 가지고 면밀히 관찰하는 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태도로부터 무언가 자신의 영역을 계속 확장해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경험하며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전구를 처음 만든 것은 에디슨이 아니었다. 스코틀랜드의 발명가였던 제임스 보우먼 린지(James Bowman Lindsay,1799~1862)가 19세기 초 먼저 발명했고, 이후 19세기 중반에 영국 화학자인 조지프 윌슨 스완 경(Sir Joseph Wilson Swan, 1828 ~ 1914)이 발전시켰다. 에디슨은 사실 그의 아이디어를 훔쳤지만 윌슨 경과는 다른 방식으로 필라멘트를 연구 및 발전시켰다. 에디슨은 무명실과 대나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수염과 구렛나루를 태워보기도하는 등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다가 실험했다. 이러한 실험정신 끝에 비로소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물질들과 온도, 습도 등 주변 조건과의 최적의 조합을 찾는 작업은 오늘날 구글의 인공지능이 담당했다면 훨씬 더 빨리 해결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에디슨이 계속해서 자신의 경계 안에서만 새로운 실험 대상을 찾아낸 것이 아닌 계속해서 새로운 물질을 탐구하며 더 넓은 곳으로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내가 모르는 영역까지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접하는 것을 주저하지않는 호기심과 탐구욕은 인간으로써 인공지능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능력이다. 그것이 인공지능에 대항해 인간이 강점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반도체 역시 마찬가지다. 영국의 한 연구실에서 연필의 흑연에서 테이프로 그래핀을 분리해내어 그것을 활용해 반도체에 활용해 본 것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곳에서 실험을 위한 새로운 단서와 물질을 찾아왔고, 그것들을 활용해 새로운 솔루션을 도모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왔다. 밴드갭이 없다는 그래핀의 약점을 탄소와 결합하여 반도체에 적합한 물질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7). 결국 인간은 문제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문제를 정의하는 역할을 계속해왔다. 그리고 이 역할 만큼은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할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문제를 발견해내고 그것을 정의하는데에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새로운 조건의 실험을 통한 예상치 못한 발견과 흥미로운 자연현상을 관찰하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다. 이는 아무리 구글의 발전된 인공지능이라 할지라도 아직 인간보다 확실히 더 잘할 수는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분야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지식이나 정보를 접하는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현상이나 물질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 그것을 다르게 해석해 새로운 솔루션을 만들어내거나, 새로운 형태의 생각을 통해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새싹 돋을 수 있는 환경을 끊임없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단기적으로 눈 앞의 것을 바라보는 좁은 시야로는 이루기 어렵다. 조금 더 넓고 크게 보고 여유를 가져야 주변을 조금 더 면밀히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도체 산업에서 또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 조금 더 “정신적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어야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유튜브(YouTube) 알고리즘의 비밀
전 세계적인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는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완벽히 파악해 그 사람이 좋아할만한(혹은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컨텐츠를 알맞게 추천한다. 이 것이 가능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구글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과연 어떻게해서 가능했을까?
첫 번째 알고리즘의 단계는 2005년과 2011년 사이로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본 콘텐츠를 추천하는 방식이었다. 두 번째 진화는 2012년부터 2016년 사이에 일어났다. 행렬 인수분해(Matrix Factorization)을 활용한 것이다. 콘텐츠의 특징(장르 등)과 취향(평점 등)을 데이터의 행(column)으로 삼는다. 이것을 분석하여 각 사용자가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을 기반으로 사용자가 “긴장감”, “감동", “공포", 혹은 “익살"등의 감정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고, “현실성” 혹은 “가상" 등 영화적 배경에 대한 취향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에 대해 점수를 부여하고 합산하여 인수분해의 함수에 입력값으로 넣어 결과값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진정한 추천 알고리즘의 시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런데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러한 연산을 계속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특징은 더 많아지니 연산시간은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데이터의 양 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범주까지 엄청나게 늘어나버린 것이다. 여기에 시계열 데이터까지 같이 고려를 해야하니 훨씬 더 연산해야할 것이 많아졌다. 이에 대하여 알고리즘은 2017년을 기준으로 한번 더 진화하게된다. 여기서부터 인공지능이 들어온다.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은 데이터가 많을수록 더욱 정확해진다. 2016년 구글은 <All You Need is Attention>이라는 논문을 통해 세계최초로 Transformer라는 인공지능 모델을 세상에 발표한다(8). 이 모델은 자연어처리와 비전분야에서 상당한 성능을 나타내 인공지능의 도약의 매우 좋은 예제로 평가받고 있다. 이 인공지능 모델은 특정 문장에서 모든 단어에 각각 중요성에 따른 점수를 매긴 후 가장 점수가 높은 즉, 가장 중요한 단어를 중심으로 학습해 연산을 진행하는 것이다. 마치 인간이 “너는 어제 저녁에 밥 먹었어?” 라는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를 나타내는 명사가 “밥먹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어제 저녁"이라는 시간 정보를 가장 중요한 정보로 파악하는 것처럼, 한 문장에서 각 단어들에 점수를 매겨 문장에서 중요한 내용을 찾아내고 그러한 방식으로 전체 문장의 맥락이나 의미를 학습하는 것이다. 해당 인공지능 모델의 발표 이후 거의 1년 여만에 알고리즘에 구글의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거기에 때맞춰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도 한단계 도약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현재 유튜브 알고리즘이 시청수보다는 시청시간을 위주로 추천한다는 것이다. 즉, “몇 명이 보았냐”보다는 “누가 얼마나 보았나"가 더 중요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잠깐 보고만 컨텐츠보다는 내가 끝까지 시청한 영상이 내 관심을 끌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 것이 말해주는 것은 반드시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았다고해서 그것이 나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애플이나 테슬라도 한 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거나 무시당한 적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자신들의 길을 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게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면서 나의 믿음을 잃지 않고 할일을 하면 반드시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 사실 바이럴된 많은 동영상들이 그렇다. 업로드될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는데 어떠한 계기로 밈(MEME)을 타면서 많은 관심을 얻게된 영상들이 매우 많다. 우리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다. HBM 시장이 지금 이렇게 NPU의 시대가 오면서 성장하리라 예상하지 못했으나 삼성과 하이닉스는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는 메모리 반도체의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바로 이런 태도를 우리가 고수해야하며, 그래서 더욱 눈앞의 단기적인 성과가 없다고해서 우리가 걸어오던 길을 멈추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기술적 윤리
유튜브 알고리즘의 단점은 사람에게 자신이 보던 것만 계속 보게한다는데 있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특정인의 취향을 한 곳에 가두는, 자신을 오히려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틱톡(TikTok)이 최근 미국 정부로부터 서비스 금지 명령을 받은 것은 해당 앱이 중국 회사인 ByteDance가 개발했기 때문이기도하지만, 영상을 추천해 리스트로 출력해주는 유튜브에 비해 추천된 영상을 사용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바로 재생하므로 사용자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하는데 문제가 있다. 틱톡은 또 한 영상이 끝나면 바로 다음 추천 영상을 재생하기에 사용자로하여금 특정 알고리즘에 너무 깊게 빠지게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특정인이 잘못된 알고리즘에 빠질 경우 관련 영상에 가짜뉴스나 자극적 콘텐츠만 부분별하게 추천되고 재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미국 정부는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주지않고 알고리즘에 지나친 중독성을 허용하고, 외국에 자국인들의 데이터를 유출한다는 이유로 제제를 가했다. 유튜브 역시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다. 특정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취향이 담긴 콘텐츠에만 노출되므로 사회적 분열을 야기하기도한다. 실제로 유튜브가 이러한 사회적, 정치적 분열에 일조하여 특정 국가의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경우는 꽤나 많을 것이다. 유튜브는 더더욱 가짜 뉴스를 구분하거나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조차 하지 않고 있다. 알고리즘 역시 나와 다른 취향의 콘텐츠를 추천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신이 보고 싶은 것에만 계속 탐닉하게 만들어, 그것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알고리즘의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유튜브와 같은 범세계적 서비스를 운영하는 구글이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이기도하다.
구글은 일단 현재 “윤리" 보다는 “돈"을 택했다. 윤리적인 장치에는 소홀하고 “기술발전”에만 집착하여 인공지능을 개선하는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구글은 인공지능이 다수의 인간을 대체하고, 나아가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갖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닌가하는 섬뜩함마져든다. 인간을 넘어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구글은 대단하기는하지만 존경스러운지는 잘 모르겠다. 윤리적이지 않은 기술의 사용이 많은 사회와 국가에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것처럼, 더 이상 이러한 비윤리적인 답습을 막으려면 구글의 고객인 우리 모두가 스스로 나쁜 알고리즘에 노출되는 것을 막는 방법 밖에는 없다. 너무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콘텐츠를 보기보다는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명상음악이나 저번 주에 출간된 평점 높은 장편소설, 혹은 아카데미 수상 영화를 다룬 콘텐츠 등을 소비하면서 점차 자극적이고 나를 본능에만 집중하게하는 콘텐츠와 멀어지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건강하다면 자신의 유튜브도 계속해서 그러한 콘텐츠를 추천할 것이다. 구글은 고객인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겠다고했고, 우리 스스로 알아서 지키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소비자로써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권리가있다. 구글의 알고리즘에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알고리즘을 이용해 우리 스스로가 더 나은 삶을 사는데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 존재하는 그 어떤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기위해 태어난 기업들 중 알아서 선행을 하는 곳은 한국에도, 미국에도 많이 없다. 우리 스스로가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로 남기위해 노력해야한다.
양자컴퓨터
양자컴퓨터는 일반적인 컴퓨터로 할 수 없는 연산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반적인 컴퓨터보다 훨씬 작은 미세한 단위에서 연산을 수행해야하므로 미세 입자 동작의 법칙인 양자물리학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일반적인 전자물리학이 적용되는 것과 아예 다른 세계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자컴퓨터는 극저온인 영하 273.15에서만 동작이 가능하고 소음 등 외부 요인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야한다. 조금이라도 외부의 영향을 받는 순간 미세 입자가 이상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온에서 작동가능한 양자컴퓨터를 개발 중이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어쨌든 이런 양자컴퓨터는 초당 경단위의 연산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간 엄두도 내지 못한 문제에 도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질에서 수만가지 다른 온도 및 습도 환경조건의 경우의 수를 찾아 가장 이상적인 신약개발 조합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방대한 연산을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진행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분명 매우 매력적이고 시장성도 있을 만한 기술이다.
지금 구글은 이러한 연산을 세계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Sycamore라는 슈퍼 컴퓨터를 보유하고있다. 구글의 엄청난 인공지능 기술과 양자컴퓨터 기술이 만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양자컴퓨터의 발전 역시 반도체의 발전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양자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이러한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회사와 협업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올 수 밖에 없다. 반도체 생태계가 잘 갖추어진 우리나라에서 양자반도체에도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즐기는 테슬라(Tesla)
테슬라만큼 여러 사업에 문어발처럼 다리를 뻗는 세계적인 기업이 있을까? 자동차 사업을 하는 것도 모자라 트위터를 인수한 것(현재는 X), 태양광사업을 시작한 것(SolarCity), 자기부상열차 하이퍼루프 개발(The Boring Company), 민간 우주 사업을 시작한 것(스페이스 X)도 모두 현 테슬라의 CEO인 일론머스크(Elon Musk)다.
그 역시 애플이나 구글 못지 않은 엄청난 야심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신종지능을 구현하려고 Neuralink라는 연구를 시작했다. 이를 활용해 인류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지능을 만드려고한다. 그리고 스페이스 X를 통해 우주 여행을 보편화 시키기를 원한다. 지금 머스크가 찍은 점들은 연결해보면 아마 이런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상에서 그 어느 곳으로 엄청 빠르게 순간이동하듯이 갈 수 있는 하이퍼루프를 활용한 자동차를 보편화시키고, 모든 자동차가 스스로 태양열로 하여금 발전할 수 있게 만들어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며 환경오염 문제도 해결하고, 사람들과 기계들을 SNS처럼 연결하여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게하면서 인간의 개입이 없어도 완벽하고 안전하게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 나아가서 그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우주를 문제없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누빌 수 있는 비행체를 만들어 누구나 우주 여행을할 수 있게끔 하는 것”
테슬라는 이러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 필요한 모든 것에 손을 대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자율주행차의 차체를 만들고, 거기에 완전 자율주행차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반도체도 만든다.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해서 인공지능 반도체도 스스로 만든다. 또한 자신들의 전기자동차를 구동하기 위한 배터리를 만들어 장착한다. 마지막으로 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구현해 탑재한다. 즉 자율주행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자신들이 다 하고 있다.
테슬라는 자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인 오토파일럿(Autopilot)을 2014년 발표했다. 이때 단순히 소프트웨어만 개발한 것이 아니라 자율주행을 위한 인공지능 반도체 FSD(Full Self-Driving)와 그것을 활용할 컴퓨터인 HW(HardWare)라는 것도 같이 선보였다. 테슬라 역시 애플을 보면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제어할 수 있어야 사용자 경험과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테슬라가 단순한 자동차회사가 아닌 IT회사의 정체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여기에 있다. 그들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고품질의 자율주행기술 구현을 위해 인공지능에도 매우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토파일럿은 세 단계로 발전했다. 첫 단계는 그냥 “오토파일럿(Autopilot)”으로써 앞 차와의 간격을 인식하고 자동으로 속도를 조절하는 TACC(Traffic Aware Cruise Control)기능만을 지원했다. 진정한 혁신은 다음해에 일어났다. 2단계인 향상된 오토파일럿(Enhanced Autopilot)을 통해 0지정된 차로를 벗어나지 않는 Autosteer 기능, 센서나 카메라로 자동으로 차로를 변경하는 ALC(Auto Lane Control) 기능, 고속도로를 완전히 자율주행에 맡길 수 있는 NAH(Navigation on Autopilot on the Highway)기능, 자동 주차 기능인 Autopark, 자동차 호출시 자동으로 반응해 주차 공간에서 나오는 Summon 기능, 그리고 사용자가 호출한 지역까지 자동으로 이동하는 Smart Summon 기능 등을 맛보게 했다. 이 두 번째 레벨의 오토파일럿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본격적인 자율주행시대로 들어왔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단계인 FSD(Full Self-Driving)은 이전 향상된 오토파일럿 기능에 더해 도로의 표지판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TLSSRC(Traffic Light and Stop Sign Recognition Control)기능과 시내에서 최소한의 운전자 인풋만을 요구하는 거의 완전 자율 주행에 가까운 NACS(Navigation on Autopilot in City Streets)기능, 여기에 빈 주차공간을 찾아서 스스로 주차하는 Smart Autopark 기능을 지원할 예정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이 문제없이 지원된다면 자율 주행은 거의 90% 이상 실현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정도면 단순한 자동차가아닌 움직이는 인공지능이라고 볼 수 있다.
테슬라는 그동안 자율주행차가 무엇인지 잘 상상이 가지 않던 자동차 업계에 자율주행차를 만들어 직접 보여줌으로써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실제 자율주행차 기술이 최초로 개발된 곳은 1977년 일본 쓰쿠바 기계공학 연구소였다. 비록 차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수준이었지만 인류 역사에서 처음 등장한 자율주행 기술이였다. 그 기술이 나온 이후 계속 성숙기를 가졌으나 안전 및 보험 문제 등으로 누구도 상용화를 할 생각을 못하다가 테슬라가 과감하게 뛰어들어 “자율주행차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준 것이다.
테슬라는 또한 전통적인 자동차 업계와는 다르게 2021년 이후부터 레이더를 없애버렸고, 2022년에는 초음파 센서를 없애버렸다. 기술이 성숙되면서 자동차의 눈인 카메라만으로도 충분히 자율주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테슬라 비전(Tesla Vision)이라는 기술을 도입해 카메라가 포착한 이미지를 픽셀 단위로 분석해 그 “깊이"를 측정하고 그 정보로 3D 지도를 만들어 자동차가 주행에 활용하게끔 만들었다. 이 3D 지도 정보가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주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즉, 카메라로 감지하는 정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게끔 시스템을 구성한 것이다. 인간이 자동차를 운전할 때처럼 눈만으로 실시간 상황과 주변환경을 확인할 수 있다는 믿음이 보이고, 마치 애플처럼 시스템을 너무 복잡하게 구성하지 않고 반드시 필요한 부품들만 남기고 그들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미니멀리스트 전략처럼 보인다.
테슬라는 기존의 전통적인 자동차회사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애플, 구글과 같은 IT회사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자동차산업에서의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할 수 있다. 실제로 테슬라는 볼보, 현대, 도요타와 같은 전통의 강자들처럼 단차문제를 상당히 해결하거나 차체의 안정성을 충분히 구축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장은 단순히 그런 문제가 있다고해서 테슬라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상상했지만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 냈다는 것, 보수적인 자동차업계에 새바람을 넣어 기존 자동차 업계도 자신들을 따라 자율주행차를 생산하는 흐름에 올라타게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테슬라가 앞으로 얼마나 자동차 업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시장에 가져온 임팩트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구축한 팬덤은,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창조해 거기서 오랫동안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처럼 그 불씨가 쉽게 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삶의 모토는 최첨단 기술을 확보해 시장의 강자가 되는 것보다는, 인류의 발전과 도약을 이뤄내는데 있어 중심축이 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것, 그것은 전세계 모든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눈여겨 봐야할 비전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우리가 남들이 가지 못한 길을 개척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거기서 세상의 다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발견해 내기를 바란다.
배터리 시장에서의 기회
테슬라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단연 배터리다. 테슬라는 제프 단(Jeff Dahn) 이라는 달하우지대학(Dalhousie University)교수와 협업하여 4860 배터리를 제조했다. 그는 이 분야에서 상당히 권위적인 인물로 수명이 100년이나가는 배터리를 만들어낸 사람이기도하다. 테슬라는 그와 협력하여 자신들의 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Gigafactory)를 세우고 여기서 배터리를 경량화하는 동시에 내구성 및 수명을 늘리기 위한노력을 이어나갔다. 그 결과 4860 배터리를 여러개 자동차에 적재하여 연료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품질을 개선했다. 4860 배터리는 니켈(Ni), 망가니스(Mn), 코발트(Co), 알루미늄(Al)등으로 이루어진 NMCA 배터리다.
배터리 자체는 전기자동차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품이고, 전체 전기자동차 생산에 있어 절반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 말은 배터리를 개선할수록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 비용을 가장 큰 효과로 절감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하다. 환경오염 등에 대한 문제로 점차 자동차도 전기자동차로 전환되는 추세여서 자율주행차는 필연적으로 전기자동차로 갈 수 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테슬라가 배터리 기술을 발전시켜 전력 효율성을 높이고 동시에 배터리의 안정성과 재활용성, 경량화 등을 개선했다는 것은 질높은 자율주행차를 만들 수 있다는 매우 좋은 보증으로 여겨진다. 자율주행차의 기반이되는 전기자동차에 대한 기본 기술을 확실하게 갈고 닦았다면, 그 위에 자율주행관련 부품과 소프트웨어만 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의 기능을 더하기전에 반드시 전기자동차로써의 안정성과 품질이 보증되어야하는 것이다. 테슬라는 이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배터리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문제는 현재 테슬라에 탑재되는 대부분의 배터리가 4860 배터리가 아닌 중국산 LPF 배터리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비용면에서 훨씬 저렴하면서 성능도 뛰어나기 때문이며, 아직 NMCA는 상용화를 시킬 정도로 충분한 검증이 되지 않았다. 현재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사용되는 배터리는 LPF 배터리로써 거의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된다. 지금 전세계에 가장 전기차배터리를 많이 판매하고 있는 회사는 중국의 CATL과 BYD다. 이 회사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를 테슬라 뿐만아니라 폭스바겐이나 아우디 벤츠 등도 활용하고 있다. 아직 테슬라는 완전히 독립적인 배터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4860 배터리에 대한 연구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으므로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도 LG 에너지솔루션, SK ON, 삼성 SDI 등의 회사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중이며, 세계 시장에서 중국의 CATL과 BYD다음으로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이 분야에서는 아직 독보적이지만, 그렇다고 따라잡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중국이 유리한 점은 현재 전세계적인 대세인 리튬이온(LiON)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Li)의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또한 자국내 매우 큰 전기차 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중국의 내수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더 크다는 말도 된다. 현재 반도체 못지않게 정치적으로 얽혀있는 배터리의 특성상 우리나라가 중국내에서 자국 회사인 CATL과 BYD를 밀어내고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력을 계속 발전시켜 중국 이외의 전기차 선도 회사들이 집결해있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 점유율을 늘려 그들의 인정을 받는다면, 나머지 다른 국가들의 후발 회사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산 배터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점차 배터리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전통적인 자동차 시장의 리더들에게 얼마나 오래 지금의 점유율을 유지하거나 늘릴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배터리는 신약 개발만큼 최적의 비율과 순서로 물질을 결합하고 그에 맞는 온도 및 주변 조건을 잘 찾아내야하므로 개발단계에서 매우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이 작업을 테슬라는 계속하고 있고 중국 및 우리나라의 배터리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후발주자인 유럽의 전통적 완성차 업체들이 우리를 따라오는 상황이고, 아마 그들이 우리의 것보다 우수한 배터리를 만드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이제 시작한 것을 이미 수년 전 부터 시작해 상용화하는데 성공했으므로 우리가 계속 배터리 품질의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면 꽤 오랫동안 지금의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가 만들어낼 미래 반도체 시장의 기회
테슬라는 자율주행을 위한 인공지능 반도체를 만드는데 있어 본래 엔비디아라는 인공지능 반도체를 리드하는 회사와 협업했으나 실패하며 인명 사고를 냈다. 그 후로 그들은 인공지능 반도체 HW를 자신들이 직접 만들기로 방향을 바꿨다. HW 1.0과 2.0 그리고 2.5까지 엔비디아와의 협업을 마무리하고 2019년에 발표한 HW 3.0에서는 카메라의 개수를 유지하는 대신 자신들이 만든 14나노 크기의 1세대 FSD 인공지능 반도체를 탑제했다. 작년인 2023년에는 7나노 2세대 FSD 인공지능 반도체인 HW 4.0을 발표했다. 흥미로운 것은 FSD가 삼성전자의 Exynos AP 반도체를 참고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인연 때문인지 1세대에서는 삼성전자가 이 반도체를 양산했다. 그러나 수율 문제가 터지며 테슬라는 2세대 FSD에 대해서는 TSMC와 양산 계약을 맺었다. 삼성전자는 이 문제를 개선했다고하며 테슬라와 HW 5.0에 들어갈 4나노 3세대 FSD 반도체를 양산하기로 합의했다고한다. 올해 발표될 이 인공지능 반도체의 성능이 과연 얼마나 발전했는지에 따라 삼성과 테슬라의 파트너쉽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테슬라는 자신들의 인공지능을 위해 반도체 뿐 아니라 슈퍼컴퓨터에도 공을 들였다. Dojo라는 슈퍼컴퓨터를 만들고 처음에는 엔비디아와 협업했으나 자신들이 직접 하드웨어를 만들지 않으면 모든 것을 최적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스스로 D1이라는 회사와 협업해 Dojo를 개선했고 이전에 소개한 HW 3.0 이후 버전과 FSD,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토파일럿 및 테슬라 비전 등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테슬라가 앞으로도 슈퍼컴퓨터를 자체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킨다면 또 그에 맞는 반도체가 필요할 것이다. 이미 삼성전자와 협업하고 있는 테슬라라면 슈퍼컴퓨터에 들어갈 반도체 역시 삼성전자에게 맡기지 않을리가 없다. 테슬라가 앞으로 만들어낼 인공지능 반도체 생산에 대한 수요가 기대되는 이유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 파운드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또다른 기회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법(Never Give Up)이다. 스페이스 X가 최초의 민간 우주선을 성공적으로 발사에 성공한 2020년 5월 30일 이전까지 그들은 2010년 부터 NASA와 협업해 상업용 유인 우주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스페이스 X로써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돈이 들어갔고 중간에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결국 그들은 해냈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의 일생을 돌아보면 그는 계획한 것은 무조건 해냈다. 자율주행차를 보편화 시킨다는 목표로 오토파일럿 3단계까지 구현하는데 성공했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뿐 아니라 필요한 각종 반도체 및 하드웨어도 직접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민간 우주선 발사 성공으로 우주로 가는 여행을 보편화 시키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아직 초고속 운송수단인 하이퍼루프 프로젝트는 진행중이지만, 지금까지 그의 행보를 보면 그 프로젝트에서도 반드시 의미있는 성과를 어떻게든 이룩할 것처럼 느껴진다.
필자는 무엇보다 10년이 넘도록 무언가 하나의 목적에 매진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는 것,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스스로를 믿고 혁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매우 높게 산다. 그만큼 혁신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할 사회적 각오가 있었다는 것이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지켜봐주는 경영자들이 있었다는 의미다. 테슬라의 성공은 단기간에 지름길을 가려는 태도로는 결코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위대한 일은 그만큼의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당장에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많은 계획을 틀어버리고 방향없이 이리저리 헤매며 상대적으로 변덕스런 외부의 영향에 쉽게 휘둘리는 한국의 다수의 조직들이 테슬라와 머스크를 보며 무슨 감정을 느낄지 궁금하다. 적어도 확실한 미래가 보장된 반도체 업계에서는 그러한 악습이 확실히 철폐되어 진정한 혁신이 잉태하고 성숙할 시간과 비용이 지속적으로 투자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불멸을 꿈꾸는 테슬라와 메타
인간을 운전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우주로 쉽게 여행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머스크의 목표는 상당히 진전되었다. 그렇다면 테슬라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바로 불멸(不滅)이다. 다만 그 방식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가아닌, 전자두뇌와의 결합을 통해서다. 인간 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기계로 다운로드하는 방식으로 불멸을 꿈꾼다. 즉, 뇌의 데이터를 몸이 죽어서도 기계에 남기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매진하는 머스크의 조직은 뉴럴링크(Neuralink)라는 곳이다.
또한 머스크는 이렇게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를 연결하면 인간 지능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특정 상황에서 인간으로써 감정이나 외부 요인으로인해 판단이 흐려지면 인공지능이 결정을 도와줄 수 있다. 그렇게되면 모든 인간이 최대한 지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된다.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도 활성화되지 않는 뇌의 부위에 전기신호를 주어 살릴수도 있고 인공지능이 그 부위를 에뮬레이션하여 대신해 줄 수도 있다. 즉,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목적도 있다.
메타(Meta)는 페이스북(Facebook)이 사명을 고친 것인데, 미래 산업으로 주목받는 메타버스(Metaverse)와 VR/AR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메타역시 전기신호로 인간의 의도를 알아채고 그것으로 어떠한 행위를 할 수 있게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관심이 많다. 메타 역시 불멸의 컨셉에 관심이 있어, 인공지능 칩에 관심이 있는데, 그들은 테슬라와는 다르게 인간 뇌에 심지않는 비침습형 AI칩을 개발 중이다.
메타와 테슬라의 인공지능을 둘러싼 선의의 경쟁은, 마치 완전 자율주행차에 대한 개발 방향이 다른 GM과 포드의 경쟁을 떠올리게한다. 포드는 테슬라를 따라잡기 위해서인지 수 년내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기술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고, GM은 이와 반대로 보다 점진적으로 ADAS시스템의 기능을 확대해 운전자의 개입을 천천히 줄여나가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두 회사 중 어느 회사가 테슬라의 좀 더 강력한 경쟁자가 될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이처럼 메타와 테슬라의 경쟁 역시 어느 쪽이 승리하든, 인간에게는 마치 두 가지 시나리오의 기술 발전이 동시에 펼쳐지는 평행 우주를 사는 느낌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겠지만 이러한 거대 기업이 자신들의 신념을 바탕으로 거대한 실험을 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기술 발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그 움직임을 따라가려는 많은 후발 기업들에게 좋은 본보기가된다. 이러한 거대 기업의 움직임은 후발 주자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걷지 않은 길을 가려면 불안감과 두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길을 누군가는 가야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러한 실험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의 발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느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길을 갈 수 있는 이들은 그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노하우를 축적하고, 손해를 입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진이들 일수록 더 리스크가 적다. 그러니 메타, 테슬라 등이 이러한 길을 앞장서서 가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우리 나라에서도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고 개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대기업들이 나서줘야한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들이 길을 터줘야 다른 후발 기업들도 그 발자취를 따를 수 있다. 삼성, 하이닉스, 현대, LG등 우리나라의 메가기업들이 이제는 팔로워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주어야하는 이유다.
반격을 노리는 도요타(Toyota)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 중 하나인 도요타역시 이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도요타는 전통적인 자동차 시장의 강자로써 아직까지 전세계 판매량 1~2위를 다투는 회사다. 테슬라의 등장으로 자율주행차가 부상하면서 점차 전통적인 석유 및 가스 엔진 동력의 자동차산업은 쇠퇴기를 맞이하게되었고, 이제 전 세계의 전통적인 자동차 강호들 역시 하이브리드나 전기자동차로 완전히 에너지 패러다임을 변환하는 중이다. 도요타 역시 현재의 자동차 기술에 만족한다면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에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 및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핫한 LLM(대량언어모델) 인공지능 기술에 대항해 LBM(대량행동모드, Large Behavior Modes)라는 기술에 매진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기본적인 개념은 LLM과 크게 다르지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LLM은 텍스트 기반의 학습을 통해 디스플레이 안에 그 능력이 국한된다면, LBM은 행동 데이터를 학습해서 디스플레이 밖에서 기능을 수행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로봇의 개념에 조금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일본의 로봇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만약 일본의 로봇기술과 이 LBM 기술이 합쳐진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미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가진 일본 회사들이 LBM과 같은 로봇에 안성맞춤인 인공지능 기술을 갖게된다면 기존 로봇 시장은 물론이고 새로운 로봇 시장이 열렸을 때 일본은 여전히 매우 강한 영향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도요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미 기존 산업에서 막강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켜 해당 산업에 도입한다면, 상당한 시너지와 함께 기존 시장에서 점유율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또한 기존 산업에서 인공지능과의 시너지는 또다른 수요를 열어 새로운 시장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산업용 로봇의 기술이 음식 서빙 로봇, 공사현장로봇, 간호로봇 등 여러 다른 로봇이 필요한 분야에도 적용된다고 상상해보자. 이미 특정 분야에서 로봇 기술을 활용해 시장에 내놓고 있다면 조금 다른 성격의 일을 하는 로봇을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요타의 반격이 무서운 것이다. 이제는 뒤쳐져가는 것처럼 보였던 기존 산업의 강자가 인공지능 기술을 가졌을 때, 과연 그 회사 얼마나 더 시장 점유율을 공고히할지, 또 어떠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지 매우 흥미롭게 지켜볼 부분이다. 기존 전통 산업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업들이라면 도요타의 전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즉, 기존 산업의 기술력을 유지하면서,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켜 적용하려는 기회를 계속 엿보는 것이 좋다. 그 인공지능 기술이 기존 기술과 시너지를 발휘해 자신들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거나 높일수도 있고, 어쩌면 그 시너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수요도 창출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ASML의 “외계인으로부터 받은 레이저”
ASML은 네덜란드계 회사로써 Philips라는 회사와 ASM이 합작하여 세운 곳으로, 나중에는 두 회사에서 독립하여 부모보다 더 커진 매우 흥미로운 케이스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EUV(Extreme Ultraviolet)이라 불리는 노광장비의 기술이다.
말 그대로 “극자외선”으로써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예리한 빛”이라고 볼 수 있다. 7나노 이하의 최첨단 공정에서는 현재 ASML의 EUV기술을 대체할 수 있는 적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난 기술이 집약된 장비답게 제조하는데 상당한 리소스가 소모되며, 1년에 만들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있다. 때문에 이 장비를 손에 넣는 이들이 반도체 업계에서 최첨단의 선에 서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TSMC, SK 하이닉스, 마이크론과 인텔 모두가 이 회사의 장비를 얻기위해 발버둥친다. 수요가 공급보다 항상 더 크니, 이 회사의 장비는 당연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다. 중국역시 ASML의 장비를 얻기 위해 혈안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반도체 법으로 중국으로의 수출이 막혀버려 힘들어진 상황이다. 중국이 기존 반도체 권위에 도전하는 현재 형국에서 어쩌면 추격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책일지도 모른다. ASML의 장비없이는 상대적으로 기술집약도가 낮고 양산이 쉬운 7나노 이상의 반도체만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ASML의 EUV 장비없이 생산을 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수율(특정 수의 물품 생산시 불량품과 양품의 비율)을 만족할 만큼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문제다. 예를 들어 100개의 7나노 이하 반도체를 생산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불량이라면, 회사가 시장에 팔 수 있는 반도체의 수가 적어지고, 생산 투자액대비 결과물이 좋지 못해 투자대비 수익이 좋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곳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회사의 입장에서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더 이상 투자하는데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을”의 입장이지만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되면, 오히려 그 회사가 “갑”이 된다. TSMC가 파운드리 업계에서 삼성등 다른 회사들이 대체를 할 수 없는 존재가되자, 전세계의 팹리스 회사들은 무작정 TSMC에게 빨리 생산해 달라고 재촉할 수가 없게되었다. TSMC의 일정과 리소스에 맞추어줄 수 밖에 없으며, 생산을 위탁하는 비용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ASML도 대체를 할 수 있는 회사가 지구상에 없다. 당장 ASML이 마음에 안든다고해서 공급 다변화를 노리려고해도 그렇게 하는 것은 곧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에서 밀려난다는 뜻이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이다. 따라서 제 아무리 삼성전자라 하더라도 ASML에게는 다른 회사들에게처럼 제품을 빨리 생산해달라고 재촉할 수 없고, ASML의 생산량과 리소스에 맞추어야하며, ASML이 요구하는 만큼 장비에 대한 가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다. 이 회사의 매출은 약 40조원에 달하며, 이는 일반적인 파운드리 혹은 종합 반도체 회사들의 매출과 비등하거나 월등한 수준이다.
ASML의 EUV가 탄생하기이전에는 DUV(Deep Ultraviolet)이라는 “고자외선" 기술이 존재했다. 이때는 니콘(Nikon) 혹은 캐논(Canon)과 같은 경쟁자들이 있었으나, ASML의 연구 성과가 빛을 발해 지금은 두 경쟁사를 압도적으로 누르는 절대적 시장 강자가 되었다. ASML의 DUV는 경쟁사에 비해 더 얇은 자외선으로서 파장이 200nm 정도로 매우 작다. 이러한 는 본격적으로 20나노 이하 반도체 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ASML은 액침 노광(immersion lithography)이라는, 렌즈와 웨이퍼 사이의 공간에 물 혹은 용매 등을 넣어 빛을 더욱 예리하게 굴절시켜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바로 이 기술 덕분에 ASML이 DUV시장을 장악했었다.
그러나 해당 기술도 반도체가 10나노 이하로 미세화되면서 수율이 떨어지자 이때 개발된 것이 EUV이다. 기존 ArF 레이저보다 더 짧으면서 에너지는 더 많다. 노광기술이 더 발전할 수 있을까 의심될 정도로의 “초극자외선"이었다. 그러나 이 빛의 단점은 공기를 포함한 다른 물질들에 쉽게 흡수되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엑스레이가 신체를 찍으면 뼈가 광선을 흡수하여 투명하지 않고 하얗게 나타나는 원리와 같다. 이렇게되면 사물 자체에 빛이 흡수되어 웨이퍼에 회로를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지 못한다. ASML은 EUV가 지나는 공간을 진공으로 만들고, 렌즈를 포함해 빛을 흡수할만한 물질들을 완전히 없애버린 후, 특수하게 제작된 거울로 빛을 반사시켜 웨이퍼에 닿을 수 있게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이 기술이 초기에는 효과적이지 못했으나, 점차 빛의 반사력을 개선해 2017년 이후부터는 실제 양산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렸다. 그 장비가 삼성전자에 인도되었고, 2019년 세계최초로 7나노 반도체가 생산되는데 있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기술력이 안정되고 그 것이 실제 양산에서 결과로 나타나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지금 이 기술력은 계속해서 발전하여 작년에는 시간당 웨이퍼 처리량을 150장으로 끌어올렸다. 올해는 200장이 넘을 정도로 기술력을 개선한 장비가 나온다고 한다.
또한 최근에는 High-NA(Numerical Aperture)라는 기술을 구현하여 발전시키고 있다. NA는 개구수(거울이나 렌즈가 빛을 모으는 정도)를 말하는데, 빛을 더 많이 모아 웨이퍼 위에 더 선명히 맺히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EUV를 반사하는 특수 거울의 크기를 키워서 만들어낸 기술로써 작년 부터 장비에 실제로 적용되고 있다. 반사하는 거울의 크기가 커지면 반사되는 빛의 퍼짐이 더 넓어지는 원리를 활용하여, 더 많은 빛을 모을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이다. 해당 기술은 이제 3나노 이하의 반도체 생산을 가능케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사가 얼마나 끊임없이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그것을 실제 현실에 적용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ASML의 “외계인 레이져” 기술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해당 기술이 적용된 가장 최신 장비는 대당 약 4000억원에 달한다. 장비 하나가 비행기 한대보다 몇 배가 더 비싸다는 것이 흥미롭지만, ASML의 “외계인의 기술"이 적용된 것이기에, 또 그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첨단 반도체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금액은 아니다.
마치며
모든 위대한 일에는 그 무게 만큼의 시간과 비용이 따른다
자신의 생태계를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혁신에 꾸준히 시간을 가지고 매진한 애플, 끊임없이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구글, 단순히 돈 만이 아닌 인류 전체를 위한 사명감으로 위대한 일에 도전하는 테슬라와 머스크,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메타버스와 AR/VR 그리고 인공지능과 두뇌의 기술을 접목하려는 메타, 전통적인 자신들의 강점에 만족하지 않고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며 대세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는 도요타,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기위해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기술에 꾸준히 투자하고 연구하는 ASML 등 이 메가기업들의 행보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Good things come to those who wait”이란 말이 있다. 단지 좋은 것을 위해 마냥 기다리라는 격언이 아니다.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가되 급하게 가지않고, 필요한 과정을 모두 거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가라"는 뜻에 가깝다. 헌데 우리나라의 관행은 최대한 빨리 결과를 내고 싶어하고, 최소한의 비용을 투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일은 가장 좋은 결과일수록 가장 오래 시간이 걸리며 상당히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혁신을 바라면서 그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기를 꺼려한다면, 낡은 경운기를 몰면서 자동차를 경주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는 이제 다른 선진국들과 선도 업체들을 충분히 잘 따라왔고, 이제는 우리만의 답을 찾아야한다. 우리만의 답을 찾으려면 우리만의 질문이 있어야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려면 너무 급하게 문제를 풀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숙고할 시간을 가지고, 나아가서 그 문제를 더 세부적인 문제로 나누고, 거기에 더 나아가서 거기서 파생되는 새로운 질문들을 시간을 가지면서 계속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한다. 그러자면 절대 마음만 급하게 앞서서는 안될 것이다. 너무 느긋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충분히 하나씩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태도가 필요하고, 그것을 기다려주는 인내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삼성전자나 하이닉스처럼 수십년간 미래 기술에 도전하고 성과를 내고 있는 회사들이 있다. 이들은 메가기업으로써 비교적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상대적으로 다른 회사대비 더 많다. 문제는 이들과 같은 수준의 자금력을 갖지 못한 회사들이다. 현실적으로 이 회사들은 그만큼의 자원을 투입할 여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정부다. 미래 산업에 도전하는 기업들에 연구 개발비의 지원을 늘려 이 회사들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우면, 이 회사들이 국내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주며 세수를 늘릴 수 있다. 즉, 국가주도의 투자를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투자를 받는 회사들도 돈만 받고 보여주기식으로만 임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말 비전이 보이고 기술력을 갖출 수 있는 잠재력이 보이는 곳에 투자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회사들 역시 급한 마음에 충분한 품질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빠른 일정으로 시장에 제품을 내놓는 것은 지양해야한다. 그 과정에서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는 주먹구구식의 개발성 없는 프로젝트만 우후죽순 생겨날 수 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가치있는 성과일수록 그 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애플이 시장에서 성공한 이유는 특정 제품을 빨리 내놓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반응할만큼 그들이 원하는 수준까지 제품의 품질을 끌어올린 후에 출시했기 때문이다.
제품을 시장에 빨리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품이 얼마나 완성도가 높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부분이 더 있느냐이다. 진정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면 합리적인 시각으로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고 방향성을 확실하게 가진채로 제품을 개발해야한다. 그 과정에서 실패가 발생한다면 그 것 또한 감내하면서 나아가야한다. 방향성이 정해졌다면 뚝심있게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볼 때까지는 그 과정에서 나오는 그 어떤 실패도 비난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된다. 오히려 배움의 기회로 삼고 방향을 조금씩 미세하게 수정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모든 위대한 일은 시간이 걸리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로 감정적 소모도 당연히 발생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치뤄야하는 비용이다. 우리 사회 역시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확실한 방향성을 가지고 충분히 합리적인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수 있어야하며, 여러번의 시도를 용인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방향이 부재한채로 속도만 빠르다고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한강의 기적이 일어난 지난 수십년전 이후로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외 각종 용어들
- 그외 각종 용어들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직접 만들거나 제공받은 부품을 주문받은 대로 조립해 완성품을 생산하는 주체
-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er): 개발 단계부터 고객과 함께하여 완성품을 만들고 판매될때는 고객사의 상표를 달고 시장에 내보내는 주체
- 확장현실(eXtended Reality, XR): 실제 세계와 완전 다른 가상의 세계인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실제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각종 추가적인 시각 정보를 덛붙이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VR과 AR이 혼합되어 실제 세계를 보여주면서도 가상의 요소들이 배치되어 사용자가 상호작용할 수 있게하는 혼합현실(Mixed Reality, MR)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
- V2X(Vehicle to Everything): 네비게이션에 실시간으로 반영되기 어려운 도로 사정이나 교통 흐름을 차량과 공유하고, 도로를 함께 주행하는 다른 자동차들과 정보를 주고 받도록 차량외부의 모든 것들과 차량사이의 연결을 통해 안전을 도모하는 기능
참조:
(1) https://pixabay.com/photos/rope-sea-barcelona-port-harbor-1314964/
(2) https://www.etnews.com/20210923000051
(3) https://newsroom.lamresearch.com/FinFETs-Give-Way-to-Gate-All-Around
(6)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1-03544-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