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과학 유망주의 매일 글쓰기 — 35일차

배우는 자(Learner Of Life)
8 min readOct 23, 2020

내일을 알 수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

# 성공, # 변화, #진화

우리의 열정이 지금 우리를 이곳에 있게 했다.

오늘 한일:

오늘 시험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물론, 모든 시험이 다 그렇듯, 내가 완벽하게 잘 했음을 채점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한 주의 가장 큰 고난을 헤쳐나가고 나서 맞이한 시간은 어제 저녁 못지 않게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매우 다이나믹한 인생을 살아 오신, 지금은 에너지 분야에 종사하는 한 데이터과학자를 만났다. 그의 삶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 남들이 우러러보는 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가 조직의 사양길에 접어드는 사업이다보니, 조직에서 맡은 역할이 바뀔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스스로의 멘탈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자신이 원하던 일을 하기위해 정말 노력했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해당 분야의 지식이 더 이상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면 정말 나라도 암담할 것 같다.

그러나, 남들과 무언가 항상 똑같은 것도 다르게 해보고 싶은 성향을 가졌다는 사실은, 자신의 큰 자산이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 뛰어들어, 작은 것부 열심히 배우면서 자신의 길을 다져나갔다. 그러다보니, 생각보다 거기서 얻은 경험들이 흥미롭고 의미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조금씩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 나가며, 이전에는 전혀 생각치도 못한 지식을 얻게 되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떠진 새로운 눈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현실을 경험하게 한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인류로써 진화하게 된 것이다.

나는 진화라는 것이 그리 거창한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 그리고 그 지식이 융합되거나 관계되어 비로소 보여지는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변화시킨다. 인류는 구석기 시대의 노동으로 돌을 갈아 기구들을 만드는 사회에서, 농업을 통해 봉건화된 사회를 겪었고, 기술이 발전하여 산업혁명을 이루었으며,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엄청난 디지털화로 인한 초연결의 사회, 21세기의 석유라 불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한 인공지능이 패러다임이 될 것 처럼 보인다.

인류는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생물보다도 더 많은 변화를 일생에 겪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생물들은 환경의 시험을 받는다. 그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종들 만이 긴 기간동안 생존할 수 있었고, 환경에 맞게 자신을 변형시키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어떤 생물 보다도 많은 변화를 겪는 인간은, 그래서 더 빨리 변화하는 상황들에 적응하기 위해 계속 자신을 적응시켜야 한다. 특히, 기술이라는 매개체가 중심이 된 이 세상에서는, 이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없는 이들은 소외되게 된다. 그런만큼, 현대 인류에게는 그 어떤 시절보다 더 많은 역량이 요구된다. 많은 이들은, 너무나 빨리 변화하는 이 사회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따라가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물론, 그 과정이 항상 쉽지 많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서 변화를 촉구하는 상황들은 굳이 기술에 국한되지 않고도 역사상에서 고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왔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를 떠올려보자, 아테네는 지중해에서 가장 부유한 강국이었지만, 내부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점차 많은 인근 국가들의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스파르타와의 혈투로 유명한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점차 내란을 겪으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와 전쟁을 치르기 전 아테네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영원히 지중해의 강자로써 군림할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스파르타의 성장과 아테네 정치의 혼란은, 아테네인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안겨주었다. 설상가상으로, 아테네인들은 당대 최고의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를 처형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결국, 아테네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시대에 변화에 맞지 않는 선택으로 쇠락했다.

아직까지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면, 우리 개인의 삶의 레벨에서 생각해보자.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어느날 너무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지병을 얻었다고 하자. 의사는 삶을 개선하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한다. 그는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서 남들 만큼, 혹은 그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니.. 이 말은 내게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나는 어찌할지 몰라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나, 그말이 정말 내가 공부를 멈춰야 한다는 의미일까? 어쩌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찾으라는 세상의 촉구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좀 더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일단 공부하는 것을 게임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게임처럼 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앱을 활용하기로 한다. 그리고, 머리가 조금이라도 지끈 대면, 잠시 손을 떼고 멍을 때리거나 명상을 한다.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고, 식단은 채식위주로 모조리 바꾼다. 그렇게 생활습관을 고치고 꾸준히 노력한지 1년, 의사는 절대 고쳐지기 힘들 것만 같던 나의 지병이 거의 회복되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좀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한 나는,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원하는 대학의 학과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게 된다. 한 개인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일 또한, 개인이 속한 한 조직의 역사가 바뀌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개인에게 지금까지는 다른 삶의 태도를 갖도록 촉구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별거없다. 무엇이든지 계획대로만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우리들은, 살면서 계획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하지만, 점차 자라면서, 너무나 빨리 변화하는 세상에서 나의 꿈이 온전히 그 상태 그대로인 채로 머무를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달라지고 다양해지고, 어른들이 이야기했던 것 처럼 꼭 한가지 방법으로만 성공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사실 우리는 더 중요한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Carpe Diem은 “오늘을 잡아라"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좁은 의미다. 사실 이는 미래를 알 수 없으니, “오늘을 즐기고, 오늘에 집중해라.”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지말고, 일단 계획은 가지더라도 하루 하루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내가 하기 싫은 것도 조금 하다보면 생각치 못한 흥미를 발견하게 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부분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요령도 생기게 된다. 뜻하지 못한 사건으로, 나의 목표로 향하는 길이 틀어지더라도, 계속해서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그것이 원래 목표와 매우 동떨어져 보이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믿고 계속 나아가며 노력해본다. 정 아닌 것 같다면, 방향을 틀면 되는 것이고, 조금 오래걸려도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목표는 갖되, 하루하루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냥 미래를 걱정하며 행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황을 우리가 온전히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단, 그 상황이 우리에게 오더라도, 피하지 않고 인지하며, 그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자. 그렇게 고민할 여지가 주어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는 의미이다. 삶에서 얼마나 빨리 가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빨리 가도, 오래 머물 수 없다면, 별 소용 없기 때문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도착은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그곳에 닿아 있는 형태로 우리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 열매는, 미묘하게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앞으로 할일:

역사적으로 지금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의 부모와 그 이전의 조상들 모두, 어떻게 보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 계속 살고 있었다. 5.18 민주화 운동을 겪은 우리의 부모님 세대, 6.25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은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들이, 결코 우리가 지금 겪는 것보다 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은 그 어떤 세대에서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에서 항상 선택권이 주어진다. 또한 고민할 수 있는 여지도 주어진다.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의미이며, 우리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유로 인해 분명 고통을 겪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으나, 자신의 선택에 의해 그 삶이 더 나아질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세상이 이렇게 이면적인 부분을 모든 면에서 동반한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그렇게 세상이 아름답거나 두려운 존재는 아니다. 지금 내가 데이터과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도, 이전 직장을 퇴사할 수 밖에 없었던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고, 돌아보니 그것이 오히려 지금은 이 과정을 들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오늘 이 진리를 다시 한번 깨우칠 수 있게 해준 발표자님께 감사하고,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 코드스테이츠의 스태프님들께도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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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자(Learner Of Life)

배움은 죽을 때까지 끝이 없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배움을 멈추는 순간, 혹은 배움의 기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순간, 우리의 삶은 어쩌면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세상의 가르침에 목이말라 오늘도 즐겁게 배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