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으로의 여행 — 참 흥미로운 나라, 일본

배우는 자(Learner Of Life)
43 min readMay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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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영원히 가까워지기 요원해보이는 이웃

가깝게 일하는 동료로써는 좋지만,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는 어려운 존재(1)

발단: 문득 생각해보게된 이웃나라

내가 실직한 후에, 재취업 활동을 하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있다. 잡코리아, 사람인, 인크루트같은 국내 최대 잡포털사이트에서 일본에 있는 일자리의 수가 눈에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러한 포털사이트들이 국내에 있는 일자리에만 집중적으로 광고를 했다면, 최근들어서는 국외 채용에 대한 공고도 크게 늘었다. 그 중에서 일본에 있는 한국회사, 혹은 한국인을 채용하려는 현지 일본회사들의 공고가 아예 이 웹사이트들에서 때때로 광고가될 정도다.

한 기사에(2)에 따르면, 고령화와 저출산이 장기간 고착된 일본에서 점차 퇴직자들의 수가 구직자의 수를 앞지르는 경향이 수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고한다. 그래서 생겨난 재미있는 현상들이 있다. 회사가 구직자의 부모를 기업 혹은 채용 설명회에 초대해 부모로 하여금 구직자를 자신의 회사에 오도록 설득하거나, 채용 설명회에 구직자들이 자신들에게 오기도전에 부스 밖으로 적극적으로 나서며 회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라고 호객 행위를 하기도한다.

또다른 기사(3)에 따르면, 작년 대졸 구직자 수와 구인 기업의 비율은 1:1.7 정도이다. 한마디로 일자리 1.7개당 1명의 대졸자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는 순수하게 대졸로 평가되는 연령대의 사람들만 계산에 넣은 것이기에, 일반적으로 경력직의 채용 공고가 더 많은 것을 고려하고 일본의 경력자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을 감안하면, 전체 구인 기업대비 구직자의 비율은 더 구인 기업에게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 및 다른 선진국들의 채용 트렌드와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 하나있다. 일본은 일반적으로 대졸 신입을 자신의 회사에 맞게 키워 쓰는 것을 경력직을 채용하는 것보다 더 선호한다. 한번 자신의 회사에 맞게 교육시킨 신입사원을 오랫동안 정년 은퇴 시기까지 고용하는 종신고용 문화도 이러한 신입을 선호하는 일본의 고용 시장 문화와 맞닿아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적인 일본인들은 이직을 그리 자주하지 않고, 이직을 자주 하는 것을 일본 사회에서도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고한다(물론 이 것은 이직이 본질적으로 잦은 직종에 한해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신입의 트레이닝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아깝다는 판단과, 신입들의 잦은 퇴사나 이직을 이유로 기업들이 신입 채용을 꺼리고 경력 위주의 상시 채용으로 전환한 것과는 사뭇 다른 현실이다.

미국이나 독일 같은 곳만해도 인턴이나 산학을 통해 현업을 조금이라도 경험을 해본 경력직을 더 선호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일본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 무이하게 신입이 경력직보다 구직하기 더 유리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신입을 고용할 때 우리나라처럼 단기간에 업무를 빠르게 익히도록 압박하지않고, 철저하게 메뉴얼에 따라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우선시 하기에, 신입으로써는 가장 이상적인 취업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유일한 단점은 일본 회사들이 신입에게 제시하는 연봉이 상당히 낮다는 점인데, 이 부분은 경력이 쌓이면서, 특히 5년차가 지나는 시점부터 큰 폭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신입을 트레이닝하기에는 회사 차원에서도 비용이들고, 이들이 실제 성과를 내기까지는 수년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되는 시스템이기도하다.

한국에서는 신입으로써 취업 시장에 진입하기도 쉽지 않고, 들어가는 회사도 일부 대기업 및 중견 기업을 제외하면 신입을 트레이닝해 줄 수 있는 여력이 많지않다(정말 없는 건지, 아니면 투자를 꺼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따라서 초반에 경력을 쌓기 위해 사람이 잘 오려하지 않는 열악한 곳에서 경력을 쌓거나, 괜찮은 중소기업을 들어가더라도 그 안에서 치열하게 노력해서 밥값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개인시간을 바쳐서 평일에 야근을하거나 주말에 시간을 써서 회사 업무를 배워야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물론 돈 받고 하는 일이니 프로답게 성과를 내야하기는 하지만, 고작 갓들어온 신입이 곧바로 결과를 내는 일은 흔치않다. 그런 상황이 펼쳐지니 힘들게 입사해도 지쳐서 떨어져나가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 과정을 버티는 이들 중 다수는 더 높은 연봉을 줄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하기도한다. 이유가 어쨌건 퇴사자가 발생하면 회사는 괜한 투자를했다는 판단을 하며 신입 채용을 더욱 축소한다. 신입을 훈련 시키는 비용보다 경력직을 조금 더 높은 연봉을 주고 고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게되는 것이다. 이렇게되니, 점점 더 신입 채용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 한국 취업 시장의 상황이다. 여러모로 신입으로써 상당히 기회가 많은 일본이 부러워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일본이 그렇게 된 것은 저출산으로 인해 갈수록 줄어드는 구직자와 고령화로 갈수록 나이가 드는 현직자들의 비율이 필요 이상으로 벌어지면서 발생한 비자발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현재 일본은 일자리가 구직자의 수 보다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한국 뿐 아니라, 중국이나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인력을 수급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 문화적이나 언어적으로 가장 유사한 한국이 가장 좋은 대안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매우 큰 경쟁의식으로 인해 향상심이 높은 한국인들은 뭐든지 열심히 하는 습관이 있기에 신입 사원으로써 매우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한 기사(4)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일본에 신입으로 취업한 한국인의 수는 중국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고 하고, 올해에도 일본 기업 5곳 중 1곳이 한국인을 채용할 의사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으로 우리를 가장 괴롭혔고, 지금도 그 문제들이 시원하게 해결되고 있지 못하지만, 일본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와 경제적이나 정치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나라다. 독도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분쟁하고 재일교포들을 차별하지만, 일손이 부족해 한국인을 채용해 데려가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 완화에 기여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보다 수십년 앞서서 빠르게 발전하여 과학 기술 분야에서 상당한 원천기술력을 보유하고있고, 한때는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마음을 먹을 만큼 군사력을 키워본 나라다. 그런만큼, 우리 역사를 배움에 있어서, 또 세계의 정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코 무시하기가 어려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현재 겪고 있는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수십년 앞서서 겪었고, 경기침체와 정치적 방황으로 잃어버린 30년을 자처한 나라답게, 우리에게는 상당히 좋은 본보기이자 미래를 위한 상당한 참고 자료를 제공해준 나라다. 또한 일본과 우리 사이의 과거사 청산 문제, 7광구를 둘러싼 영해 점유 문제 등 상당한 외교적 난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여기에, 일본에 취업하며 살아가는 한국인, 현지에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재일교포들, 또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과 민간인들을 생각해보자.결국, 우리의 미래에 스스로 대비하고, 그들과 맞대고 살아감에 있어 실리적으로 손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일본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수불가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일본에 대한 관심 덕분에, 최근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인 박훈 교수의 <위험한 일본>이라는 책을 접하게되었다. 수십년간 일본을 중심으로 동양사학을 연구해온 그는, 그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일본을 바라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냉철하게라는 뜻은 “감정적으로 치우치며 판단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성적고 논리적인, 사실에 기반한 관찰”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일본”이라는 단어에 샘솟는 감정적인 반응을 뒤로하고, 그들의 역사적 배경을 탐구하며 그들이 어떻게해서 지금의 모습을 형성했고, 또 앞으로는 어떠한 그림을 세계사에서 그려나갈 것인지를 예측해보는 것이다.

판단: 위험하고 위태한 일본

일본에서는 야후(Yahoo)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포털 사이트라고 할 수 있다. 야후라고하면 많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추억의 웹사이트"로 손꼽힐 정도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한때 지금의 구글의 자리를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으나, 점차 검색의 효율성과 AI를 혼합한 정보기술력에서 타 경쟁 플랫폼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웹 포털 사이트다. 헌데 일본에서는 20여년 전에 세계 인터넷 포털을 장악한 야후를 썼던 사람들이 구글이라는 더 효율적인 검색엔진으로 갈아타지않았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시작될 무렵, 일본 인구 구조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던 그들은 그대로 늙어서 지금의 은퇴에 가까운 노년층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야후는 나이든 사람만 쓰는 검색엔진이라는 인식이 많다. 야후가 일본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변화를 꺼리며 기존 것을 고수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수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야후에 올라오는 기사들과, 그에 달리는 댓글 반응들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특히 이웃나라인 우리 한국에 대한 기사와 반응들이 가관이다. 거의 대부분 한국을 확실한 근거없이 비난하거나, 심지어는 열등한 민족이라는 반응까지 나온다. 최근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온 이웃나라의 위상을 인정하는 반응은 10에 1개 정도 밖에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아무래도 수십년 전만해도 일본과는 비교도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는데, 일본이 정체하는사이 한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온 것이 아니꼬웠을까? 현재 한국의 문화를 향유하는 젊은 세대들과 야후를 애용하는 노년층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상이하다. 아무래도 나이가들면, 자신이 과거 경험했던 것들이나 그동안 쌓아온 지식들을 쉽게 버리기 어려우니, 생리학적 관점으로는 그 것이 어느정도 이해가기는 한다. 마치, 다수의 일본 노년층들이 강력한 구글의 검색 엔진을 눈길도 주지않고 세계에서는 한물간 야후를 고집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포기하지않고, 자신들의 왜곡된 역사에 집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난징대학살이나 수원 제암리 참사 등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끔찍한 제노사이드(Genocide)에 대해서는 애써 감추고 부정하려하지만, 그들이 일으킨 청일전쟁, 러일전쟁등에 대해서는 강대국을 상대로 일본의 저력을 증명한 용맹하고 자랑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동시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폭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미국측에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태평양 전쟁으로 자신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피해자를 자초한다. 한마디로 아시타비(我是他非, “내로남불”이라고도한다.)의 태도다. 본인들의 잘못은 절대 인정하지않고, 타인이 본인들에게 행한 잘못에 사과를 요구하거나 타인들에게 본인의 이익을 위해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스스로의 업적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변화한 세상에도 같은 방식이 똑같이 통할 것이라는 맹신이 빚어낸, 현실부정과 스스로에대한 객관적 시선의 결여다. 바뀐 현실에서도 애써 스스로의 부족함과 나태함을 부정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버리지못해 아직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마치 루쉰의 <아큐정전>의 주인공처럼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정신승리가 가져오는 가장 큰 폐해는 “스스로를 점진적으로 멸망의 길로 이끈다"는 것에 있다. 바뀐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거나, 현존하는 문제를 진취적으로 해결할 노력을 하지 않은 사회, 조직, 혹은 국가는, 그 어떤 곳이라도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 살아남은 예가 거의 없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도 이러한 안일한 태도의 말로였고, 그 것은 결국 한국이나 대만, 또 중국과 같은 동아시아의 신흥 강국들의 큰 도전으로 이어졌다. 현재 일본은 이 3나라들에 비해서 월등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강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난 수십년간 주변 국가들의 맹렬한 추격을 허용했고, 스스로도 별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박훈 교수는 책에서 ‘과대망상이 일본이라는 제국을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일본은 1920년대 엄청난 성장을 거듭한 신흥 강국이었으나, 스스로의 오만함으로 1930년대 제국주의 열강국가가되었다. 일본의 제국화는 당시 그 만큼 강성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상당한 혼란을 겪었던, 주변 국가들인 중국과 한국에게 크나큰 위협이었다. 이때의 일본은 정말 이웃들에게 “위험한 존재”였다. 일본은 그 오만함을 고집하면서 진주만을 습격하며 세계 최강 미국에 도전했지만, 핵 무기를 맞는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하며 항복하게되었다.제국이 무너진 후, 일본은 한국의 6.25 전쟁으로 다시 한번 일어설 기회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이 전쟁의 여파로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을 때, 일본은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오만함의 싹은 다시텄고,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의 영광에 취하기만했다. 미국의 경제력을 위협할 정도로 무서훈 성장을 거듭했지만, 그 오만함으로인해 1985년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를 맞이했고, 이후 일본의 성장은 정체되기 시작했다. 그 후 수십년간 일본 경제에서는 저성장의 그늘이 짖게 드리워졌고, 그 사이, 한국과 중국, 대만은 엄청나게 빠른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 더 이상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압도적인 존재가 아니며, 일손이 부족해 주변국가에서 사람들을 고용해 데려가야할 정도로 주변국의 경제력에 의지할 수 밖에 없게되었다. 역사상 2번의 부흥기가 있었지만 스스로의 오만함으로 넘어졌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또다시 꿈틀댄 오만함의 덫에 스스로 걸리면서 이제는 더 이상의 큰 발전없이 아시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되고 말았다.

박훈 교수는 “사회의 어떤 부분에 성역을 두고 그 부분에 대한 그 어떠한 합리적 논의의 기회도 차단하거나, 오직 목소리만 크게 내면서 근거를 바탕으로한 논리와 사실을 깔아뭉개거나, 스스로의 과거와 현 조직의 모습을 그 어떤 비판도없이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이러한 모습들이 공공연하게 나타난다면, 그 사회는 이제 죽음이 멀지 않은 노인과 같은 초고령화 사회다."라고 강조한다. 실리콘 밸리를 필두로 막강한 자본력을 지닌 그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마저, 일부 지역에서는 제 3세계 못지않은 강도 및 집단 학살, 마약거래가 이루어진다. 여러 가지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며 세계 최선진국들이라 불리는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이민자들을 다수 수용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 때문에 시름을 앓고 있고, 오랫동안 누적된 저출산과 고령화로 줄어드는 연금 제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도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서울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는 등 잠재적으로 국가의 존립을 흔들 수 있는 문제가 산재해있다. 따라서 세계에서 문제가 없는 나라는 아무도없다. 우리가 이루어낸 빛나는 업적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워할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해결하기위해 다른 나라가 잘하고 있는 점을 배우려하는 등, 자존감이 높으면서도 겸손한 태도를 고수해야 그 사회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일본은 지나친 망각과 국수주의를 공공연하게 표출하면서 스스로의 운명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위태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관찰: 치졸한 일본

일본이 최근에 매우 크게 한국인들을 격노시킨 사건이 하나 있었다. 라인이라는, 일본 내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회사를 데이터 정보 유출을 이유로 지분을 100% 내놓으라는 협박을 한 것이다. 라인은 최근 50만건 이상의 고객 정보 유출을 막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처벌하기위해 현재 라인이 합작한 소프트뱅크/야후 그룹에게 완전히 지분을 내놓으라는 정치적 압박이 들어간 것이다.

이는 지난 2010년 초 정도로 거슬러 올라가야 조금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지금도 그렇지만 급변하는 IT환경에서 매우 경쟁력이 약했다. 수십년 전 만해도 전자 및 기계 제조업 기술로 세계를 호령했고, 지금도 그 영향으로 반도체 및 자동차 등 주요 중공업에서 소재 및 부품 기술에 상당한 강점을 가진 기업들이 많지만, IT 분야에서 만큼은 그들의 존재감이 매우 미미하다. 아무래도 변화가 빠르고 그것을 따라가야하는 IT 산업의 특성이 자신들의 방법을 고수하며 쉽게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이 나라와 맞지 않기 때문일까? 그러나, 다수의 외국인들에게는 이러한 일본이 여전히 인구 1억이 넘는 매력적인 시장이었나보다. 그래서 많은 외국의 회사들이 아마도 일본에서 IT 플랫폼의 존재감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라인의 모회사인 네이버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네이버는 이 당시 일본 시장에 대한 야심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카카오톡이 완전히 시장을 장악했기에 네이버가 그 틈을 파고들기가 어려웠지만,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은 아직 카카오톡과 같은 국민 메신저가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카카오톡의 성공으로 메신저의 성공이 이커머스, 금융, 엔터테인먼트 등 엄청나게 많은 잔가지를 키우며 상당한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존재감을 키워 카카오톡이 한국에서 이루어낸 성공을 자신들도 이루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한국인 개발자를 데리고 일본에 라인 법인을 세웠고, 여기에 일본인 UX/UI 디자이너들을 고용하여 일본인 친화적으로 인터페이스를 구성하려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2010년대 후반부터 라인은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의 카카오톡 처럼 여러가지 관공서 서비스 및 이커머스, 웹툰 등의 비즈니스를 키우면서 정말로 한국의 카카오톡만큼의 존재감을 일본에서 키우는데 성공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정말 아름다운 성공 신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2010년 말 무렵, 일본 정부는 라인이 일본이아닌 한국인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것에 상당한 컴플렉스를 느꼈나보다. 일본의 국민 메신저가 자신들보다 아래로 여겼던 한국인으로부터 개발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까? 이들은 이러한 열등감을 주체하지 못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라인을 완전한 일본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먼저 소프트뱅크/야후와 라인을 합작하여 50% 정도로 일본 기업이 지분을 가져오게했다. 또한 최근 미국이 중국의 바이트댄스로 하여금 미국인의 데이터를 유출한다는 이유로 틱톡을 매각할 것을 강요했다. 데이터 주권이라는 것이 전세계 정치계에서 화두가 된 것도 일본이 조금 더 강경하게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때마침 최근 라인의 50만건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음이 드러났고, 이를 계기로 삼아 라인을 강탈하려고 한 것이다. 지금 현재 라인에 남은 한국인 임원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러한 일본의 유별난 대응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데이터가 유출된 것은 물론 잘 된 것이라 볼 수 없지만, 그건 다른 외국 기업과 심지어 일본 기업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던 일이다. 예를 들어 이전에 소니에서는 수천 만건의 정보가 유출되었고, NTT라는 일본의 데표 통신사에서도 수백만건의 유출이 일어났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미국의 SNS들도 라인보다 더하면 더 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미국 기업과 본국 기업들에게도 그러한 강경한 대처를 하지 않았는데, 왜 라인에게만 이러는 것일까? 그것도 민주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시스템과 절차에 입각해 처벌 과정을 밟는 것이 아니라, 공산국가도 안할 100% 지분을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생난리를 친다.

미국이 중국 틱톡을 강매하도록 압박하는 것은 엄연히 중국이 미국의 적국으로 분류되기 때문이고, 중국 역시 이전부터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게서도 틱톡의 데이터 유출을 계속 지적받아왔다. 그러나 한국은 엄연히 미국과 함께 일본의 우방이다. 우방국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지난 19세기~20세기 초 열강이 자신의 식민지를 대하는 태도 이외에는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미국도 중국도 아닌 한국에게 이렇게 강하게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일본이 한국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최근 길게잡아 약 100년 여 정도만 일본에게 뒤쳐졌고, 그 이전에는 일본보다 항상 앞선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한반도였다. 그런데 최근 일본은 정체하고 한국은 거의 일본의 턱밑까지 추격하는 상황이되었다. 심지어 일부 분야에서는 일본을 확연하게 앞지르고 있다. 라인으로 대표되는 IT 분야가 대표적으로 우리가 일본보다 강한 분야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들의 열등감은 한국이 애써 이뤄놓은 성취를 강제로 빼앗아가려는 치졸함으로 명백하게 표현되었다.

라인이 일본에 넘어가는 것은 무슨일이 있어도 막아야한다. 라인이 일본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나 대만에서도 각광받는 어플리케이션이기 때문이다. 일본 시장은 이미 장악했고, 앞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동남아시아를 공략할 계획이었고, 웹툰으로 세계시장에도 진출할 생각이었는데, 그 것들이 만들어진 기반인 라인이라는 플랫폼을 뺏기게되면 이 모든 것을 그냥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죽쒀서 개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일본안에서 사용되는 라인은 넘겨주더라도 일본 밖에서까지 수행되는 비즈니스는 넘어가면 안된다. 더욱이 웹툰은 이제 미국 및 유럽 시장에도 나가있는데, 그 기반이었던 라인을 넘겨주면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 될 것이다. 물론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지켜봐야할 것이고, 일본회사인 소프트뱅크/야후 그룹도 자체 적자 때문에 라인을 바로 매수하는게 어려울거라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마냥 일본의 병적인 탈한국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극우 정치인들의 압박을 견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 상황을 주시해 반드시 라인이 넘어가는 현대판 경제적 경술국치를 막아야한다.

지금 이 일본의 행위는 약 1세기전 무력으로 한일병합이 이루어진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당시 한국은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매국노들과 부패한 정부 관리들에 의해 너무 쉽게 국권을 내주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이 결코 얕볼 수 없는 대등한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온 한국에 그때와 똑같이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일본이 우방인 한국에게 이런식으로 무례하게 행동한다면, 중국을 견제해야하는 또다른 우방인 미국이 이 상황을 좋게 볼리 없다. 이러한 외교적 상황을 십분 이용하여 절대로 그들이 원하는대로 순순히 IT 주권을 넘겨줘서는 안된다. 라인은 매우 많은 미래먹거리를 지니고 있다. 가뜩이나 출산율이 줄어드닌 한국에서는 해외 진출이 앞으로 더 절실한데, 그 기반을 잃게된다면 미래먹거리들을 잃는 것이다. 미래먹거리를 잃는다는 것은 성장동력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약 10조 혹은 그 이상의 잠재적 가치를 지닌 라인을 넘기는 것은 경제적 굴욕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일본에게 강탈한 경험이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도 자존심에 상처가 나는 일이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우리나라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노력한 선조들에게도 상당히 모욕적인 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21세기에는 더 이상 일본에 굴종하지않고, 대등한 국가대 국가로써 할말을 하고, 정의롭게 우리가 지킬 것을 수호하고 얻을 것을 당당히 요구하기를 바란다.

약 한 세기전에 오만함으로 전쟁을 일으켰고, 그 오만함으로 핵 공격을 맞아 정신을 차릴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반성하지 않고 지금 현재도 틈만나면 한국을 어떻게 골탕먹일지만 고민하는 것 같다. 일본이 그렇게 치졸함을 드러낼수록 한국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는 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 사실에 대해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고, 이번 라인 강탈 시도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컴플렉스를 갖는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일본은 한국에게는 상식밖의 일을 저질러도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그들끼리는 스스로 메이와쿠(迷惑)라하여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그 대상이 한국인이면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모순적인 태도를 다시한번 뼈져리게 느낀 순간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과 완전히 친해진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잘 해 줄수록, 그들은 어떻게하면 우리의 뒷통수를 칠까만 고민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미국을 중심으로한 우방으로써, 그들과 최소한 지킬 도리를 지키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선을 넘지 못하도록 확실하고 강경하게 대응할 필요가있다. 그리고 내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것은 아무래도 그들을 확실하게 알고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바램: 현명한 한국

우리의 역사를 보면 일본에게 당한적이 많다. 예전에는 “왜나라"라고 불리었던 이곳은, 과거 한반도의 영해를 곧 잘 침범하며 성가시게 했던 해적들로 악명이 높았다. 왜적의 빈번한 한반도 침입은 고려말인 13세기부터 시작되었으나, 역사상 일본의 가장 큰 한반도 침략은 16세기 말경 발생한 임진왜란이었다. 당시 일본의 패권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을 통일하고 나서, 내부의 힘을 밖으로 돌리고 중국을 점령한다는 야심으로 조선에게 길을 내줄 것을 요구했다. 그 말인즉슨, “알아서 기어라"라는 뜻이다. 이는 조선에 대한 도발이나 다름 없었으며, 조선은 그의 야망을 큰 피해를 입으면서 저지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해군 지휘관인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더라면, 히데요시의 야망을 저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때부터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변화하기 시작하며 조선이 섬겼던 명나라가 힘을 잃고 만주의 여진족을 중심으로한 청나라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선은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꺼져가는 불씨인 명나라만을 섬기며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았다. 광해군의 실리적인 태도는 결국 조선의 대외 정책이 되지 못했다. 어리석고 순진하게도 국제 정세가 의리와 신의에 기반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변화하는 흐름을 읽지 못하고 청나라를 끝까지 인정하지 못해 병자호란을 겪었다.

일본에서는 히데요시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세력이 개편되었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와 정 반대로 조선과 다시 국교를 틀 생각을 했다. 외교력을 발휘하여 조선에 임진왜란에 대한 사과를 하고 조선으로하여금 조선통신사를 파견하게하는데 성공했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와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유성용의 징비록을 일반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비난 받던 이 책이, 정작 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이다. 정작 침략자인 일본은 임진왜란을 복기하면서 발전을 도모하는데, 침략을 당한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고도 일본을 그저 왜나라로 치부하며 대륙과 자신들만이 같인 세계를 고수했다. 그러한 안일함은 20세기를 한일병합이라는, 한국 역사의 가장 큰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백번 양보해서 임진왜란은 조선 정부의 안일함으로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다시는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국가 내실을 다지는데 힘을 썼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병자호란과 한일병합은 결국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안일한 태도로 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선택의 말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기류를 파악하는데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그러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매우많은 침략을 받아왔고, 침략자들은 대부분 가까운 대륙과 열도로부터 생겨났다. 고구려 시대 수나라의 침략을 시작으로, 삼국시대때 당나라, 고려시대때 원(몽골), 왜나라의 잦은 해적 침입, 전국통일 후 일본의 침입 및, 근대화 이후 청나라와 일본의 내정간섭 등, 우리는 정말 많은 외부의 압력을 견뎌왔다. 그 중 중대한 일부는 당시 한반도 정부가 깨어있었다면 충분히 막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기에 더욱 아쉽다.

그리고 우리가 깨어있으려면, 우리 주변 국가들을 이해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중국이나 일본이 어떠한 태도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하고, 그들이 그러한 태도를 고수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이는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해본다.”와는 다른 의미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우리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키지 않더라도, 중국과 일본의 역사,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냥 그들이 싫다고 중국산/일본산 불매운동을 하는데서 그치면 안되는 이유다.

“우리는 아직 도전자의 자세로 일본을 더 알아야한다. 알아도 샅샅이 알아야 한다. 일본이 무서워하는 나라는 큰소리치는 나라가 아니다. 서울 지하철 젊은 이들의 손에 도쿠가와 시대 역사서가 들려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뿐만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의 저서가 보이고, 중년들의 대화에서 안주거리로 메이지 유신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살해된 이토 히로부미가 어째서 일본의 헌법과 정당정치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지에 대한 토론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일본은 진정으로 한국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화풀이 만으로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 정말 극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일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부와 식견이 좀 더 높아져야 한다. ”

박훈 교수가 책에서 한 말이다. 일본이 하는 모든 것이 아니꼽다고해서 그들을 욕하는데서 끝나지 않아야한다. 그런 마음이 들수록 일본을 깊게 공부하려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이 자행하는 부당한 정치적 도발에 쉽게 동요될 것이고, 그에 반박하거나 대응하기도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상당히 성가신 위치에 있다. 까다로운 이웃들에 둘러싸인 점은 안타깝지만, 어쨌든 우리의 숙명이다. 이렇게 험난한 지리적, 정치적 정세 안에서 주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우리의 이웃에 대해 경계하는 것만을 넘어서서, 진정으로 그들을 탐구하고 연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현명한” 한국인들이 많아질 때, 일본은 절대로 우리를 상대로 함부로 쉽게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대조: 규칙에 갇힌 일본과 규칙이 빈약한 한국

알다시피 일본의 “본"을 담당하는 존재는 “천황”이다. 일본의 역사는 이 “천황"이라는 존재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단 한번도 이 천황이 일본의 상징성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비록 이토 히로부미 이후로 유럽의 왕족들처럼 천황은 권력이 없는 상징적인 존재로만 남게되었지만, 그를 중심으로 일본의 정신 문화가 형성되어 왔고 그 영향은 아직도 남아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직도 일본은 레이와(令和) 시대, 헤이세이(平成) 시대 등으로 천황이 재위한 기간에 따라 년도를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2차 대전 직후 천황이 항복한 것은 일본 국민들에게있어 크나큰 수치였다. 절대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을 초월했다고 생각한 존재가,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서양 열강에 항복한다고 발표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천황이라는 존재가 법을 초월한 존재이기에, 그를 부정하는 것은 일본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모든 것들이 만들어지고 행해지기에, 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어떠한 존재가 중심이되어 이루어진 사회는, 매우 견고한 규칙과 틀을 만드는데 용이하다. 천황으로부터 시작된 국가이고, 그 근간이 천황이기에, 그 국가의 어떤 부분을 부정하는 것은 곧 천황과 일본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어떠한 구조가 잡히면 그 틀을 지키는 것이 매우 당연시되고, 그 체제를 전복시키거나 바꾸려는 마음을 먹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마치 기독교에서 정해진 예배의 틀을 부정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의심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이는 합리적 이유보다는 종교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맹신에 기반한 것이기에 틀 안의 그 어떤 것도 부정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환경의 장점은 굉장히 효율적인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나 브루나이를 생각해보자. 이들은 특정 가문이 계속해서 독재를하는 국가이지만, 국민들의 인심을 얻을 수 있도록 집권 세력이 여러 복지제도와 시스템을 확립하고 추진해 나간덕에, 왠만한 민주 국가들보다도 더 국민들이 부유한 국가가되었다. 실질적인 권력이 국민이 아닌 일부 세력에 있으므로, 큰 반대나 저항없이 정책을 밀어 붙일 수 있다. 이러한 국가들은 권력자들이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의지가 있다면, 굉장히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 일본 사회는 싱가포르나 브루나이처럼 왕족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천황이 정신적 지주로써 그의 권력을 정부에 하사했기에, 정부의 지휘가 천황의 의도라고 믿으므로 큰 반발이 일어날 수 없어 실질적으로 군주중심의 사회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치명적 단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저항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국민들이 “천황에 뜻을 대변하는 정부가 알아서하겠지”라는 생각을 하기에 정치에 무관심해지기쉽다. 어떤 나라든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크게 가질 필요가 없는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라는 반증이기도하지만, 반대로 그런 나라일수록 그 틈을 타 부패하거나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는 정권이 생겨날 위험이 크기 마련이다. 일본인들은 2차 대전후 한국 전쟁이 터지면서 다시금 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대국으로 떠올랐지만, 수십년 간의 호황에 취해 정치에 관심을 잘 두지 않았고, 그 와중에 잘못된 길로 가고있는 정부의 결정을 방관했다. 그로인해 잃어버린 30년과 같은 일본 역사상 최악의 정체 시기를 맞이하기도했다. 그 여파로 주변국의 추월을 허용했고, 현재 일본은 오히려 AI나 IT산업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정보 기술 산업에서 오히려 중국, 한국, 싱가포르보다 뒤쳐지게 되었다. 상승 욕구가 사라진 사토리(悟り)세대가 출연한 것 역시 그러한 정치적 안일함의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다.

또한 한번 자리잡힌 시스템을 잘 고치거나 바꿀 수 없는 것 또한 일본 사회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천황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역사적으로 민중이 기득권에 대한 도전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나라인만큼, 이미 짜여진 틀안에서만 살아왔고 그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나마 메이지유신으로 약 1세기 정도내에서 서양 문물을 들여와 많은 것을 바꾸기는 했지만, 그때 부터 짜여진 정서적, 문화적 틀이 현대 사회에 와서도 크게 바뀌었다고 볼 수 없다. 일본 사회 특유의 엄격함과 불필요할 정도로 많다고 느껴지는 규칙은 많은 사람들을 필요 이상으로 피곤하게 만들기도한다. 개개인을 지나치게 억누르면서 짜여진 틀에 맞게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분위기가 많으니, 그 것에 억눌린 불만이 그때 그때 소통을 통해 효과적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한번에 극단적인 사건으로 폭발하기도한다.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살은 이렇게 억눌린 일본인들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반대로 한국은 매우 역동적이다. 한국은 수 천년간 외세의 침입을 받지 않은 기간이 더 적을 정도로 항상 외세의 영향력을 겪으면 살아왔다. 고구려시대에는 수나라와 당나라에 용맹하게 맞서며 자주국의 힘을 과시했지만, 신라시대이후 막강해진 대륙의 힘앞에서 조공을 바치는 우애관계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전략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고려시대에는 워낙 강성한 원나라에 대항하는 것이 어려웠으므로,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밖에 해쳐나올 수 없었고,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나름 고려는 이 문제를 잘 헤쳐왔다. 이후 조선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대륙의 패권이었던 명나라와도 큰 문제를 겪지 않았다. 이때까지만해도 한반도의 외교적 능력은 탁월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국제정세를 읽고 실리적으로 외교문제를 처리하지 못한 순간들이 더 많았다. 조선 중기 율곡 이이 선생의 10만 양병설을 무시하고, 강성해지는 이웃나라의 군사력에 대비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임진왜란이라는 조선 역사의 가장 큰 비극으로 발전했다. 그 사건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말자는 의미에서 유성용의 <징비록>이 출간되었으나, 이는 오히려 한국에서는 널리 읽혀지지 못한채 일본에서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조선이 당파싸움에 매몰되어 나라 안팎으로 대중들의 불만과 급변하는 정세에 무지한 사이, 일본은 근대화를 시작하고 모든 제도와 시스템을 뒤엎는 메이지 유신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성장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일본보다 확연하게 군사력과 경제력이 열세였던 한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운요호(雲揚號)를 앞세워 강제 개항을 요구한 일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매국노들의 출현으로 별다른 저항한번 해보지 못한채 나라의 주권을 내주는 경술국치를 경험했다. 일본에게 주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정부는 단합되지 못했으며, 청나라에 의지하는 세력도 있었고, 당시 민씨는 러시아도 끌어들이려했다. 약소국으로써 강대국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점은 분명히 있었을지 모르지만, 내부적으로 단합되어서 외교력을 발휘했다면, 그 안에서 세밀한 줄다리기로 일본에게 주권을 강탈 당하는 상황을 막거나, 혹은 최대한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은 그런 일제 시대를 겪고나서, 이후 6.25 전쟁까지 겪으며 기존의 기득권들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한국의 왕족이나 전통적 계급인 양반도 일제에 의해 처형당하거나 몰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틈을 비집고 이승만과 김일성이 새로운 체재아래에서 권력을 차지했다. 임진왜란부터 시작해서 6.25 전쟁까지 근 수 백년간 혼란의 역사를 겪는 동안,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고 상실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 그에 따라서 빈번하게 기존 규칙과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졌다. 역사상 외세의 침입을 거의 받지 않은 일본에 비하면,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한들 정말 다이나믹하고 변화 무쌍한 역사를 살아낸 한반도인들이다.

한국은 이러한 혼란의 역사를 겪으면서, 정치인들의 무능함을 매우 자주 목격했다. 임진왜란당시 원균은 섣부른 판단과 안일함으로 해군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이때부터였을까? 한국인들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제대로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의병이 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국의 민중 혁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의병은 상당한 활약을하며, 일본군을 한반도에 몰아내는데 있어 적지않은 공을 세웠다. 이순신 장군도 단언컨대 이러한 의병의 활약이 없었다면, 일본군의 물자보급을 효과적으로 끊고 해전에서 승리하는데 더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후 일제시대에도 일어난 3.1 운동, 안중근, 안창호, 김구 등으로 대표되는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일제에게 끈질기게 항쟁했다. 6.25 전쟁때는 북한군을 가장한 수백명의 학도병들이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있어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 역시 실권을 가진 상급 장교가 아닌 일반 병사나 하급 부사관/지휘관들이었다. 서울시민이 남하할 수 없도록 다리를 부러뜨리고 비겁하게 도망친 이승만 정권의 기득권들과는 매우 대비되는 모습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이 끝날무렵 전두환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탄압하려는 움직임이일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사살당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민중들은 더욱더 군사정권에게 거세게 저항했고, 마침내 민주적 절차에 입각한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진정한 공화국을 설립할 수 있었다. 이웃나라 일본의 역사에서도 민중을 향해 국군이 발포한 역사는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독단적인 정부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저항은 더더욱 없었다. 그만큼, 한국은 수 백년 동안 일본과는 다르게 기득권에 대항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민중들의 혁명의 역사가 있었고, 그렇기에 아무런 비판없이 일본처럼 순순히 정부에 따르거나 무조건 동조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인 민중을 보유한 한국의 장점은 분명 시민들이 정책과 정부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정부가 잘 못하면 언제든지 권력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해냈기에, 권력을 잡은이가 최소한 다수의 국민에게 반하는 행동을 하기가 어렵다. 이는 분명 정부로하여금 국민의 눈치를 보게하기때문에,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밀어붙여야하는 분위기가 더 용이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만약 지도자가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이러한 체제에서는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열린 자세로 소통하면서 민주적 절차에 따른 정책 입안과 정치를 펼치는 것이 가능하다.

반대로 이러한 한국의 약점도 분명이 존재한다. 이러한 민주적인 공화정은 여러 다수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며 가능한한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반대로 시민들이 편을 나누어서 대립해 비효율적인 정치로 변질할 가능성도 있다. 조선 시대 때부터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 등으로 나뉘어져 당파싸움을 하던 것이 계속 이어져내려왔는지, 한국에서는 메이저 두 당이 대립하며 대통령이 당에 따라 5년에 한 번씩 바뀌는 일이 잦았다. 안타까운 것은 수십년 전부터 정부가 지역감정을 이용해 서로를 적대시하는 정치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특정 지역이 특정 정당을 무조건, 무비판 적으로 지지하는 문제 때문에 객관적으로 특정 후보를 검증하고 해당 후보가 내 삶에 어떠한 도움을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없이 특정 당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투표를 하는 행태가 아직도 남아있다. “OO가 싫어서 OO에 투표했다.”는 최선이 아닌 차악에 투표하는 상황마저 생긴다. 그저 누군가가 싫어서, 나를 위해 일할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없이, 그저 “내가 싫어하는 이의 반대인 사람”에게 소중한 한표를 낭비하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도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떠한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그렇게 나아가려고해도, 그 정책을 꾸준하게 밀고나갈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수립되면, 대통령을 포함해 새로운 담당자들에게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하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정책의 방향성을 논의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제시해야한다. 그 정책이 의회에서 의원들과의 회의를 통해 입법이 되기까지 충분한 논의를 통해 구체화되거나 수정되어야한다. 그렇게해서 정책 입안시기를 결정하고 그에 대한 예산과 인력을 잡는 이 일련의 모든 과정이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짧게는 1년에서 길면 2년 이상이 걸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5년 단임제를 채택하기때문에 그 5년안에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금방 정권이 전복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임기 후 2년이 지나 그 정책이 본격적으로 행해지고 효과를 보기 시작하려면 적어도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바라봐야한다고한다. 5년도 아주 관대하게 보았을 때의 이야기이고, 일반적으로는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5년 중 2년을 정책을 입안하느라 보냈고, 3년 동안 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건 대단히 큰 착각이다. 그 3년 안에서도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시간까지 따져본다면, 일반적으로 대통령이 무언가 확실한 정책적 성과를 보여주기에는 5년 임기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여기에 더해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그 외 사람들은 공격하는 부패한 언론도 한국에서 효율적이고 건강한 정치가 피어나지 못하게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주요 언론들은 우리의 국익을 위해 보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반하는 행위를 어떻게든 잘 했다고 포장해서 보도한다. 자주적으로 정치를 펴고 실리적으로 국익을 위해 외교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아래 일본이나 미국에 우리의 이익을 그냥 양도하는 속된 말로 “호구"처럼 보이는 외교를 하고 있다. 이러한 안일한 정치에 국민들이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자리잡힌 건강하지 못한 맹목적인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와 이를 가능하게하는 편파적이고 부패한 언론때문에, 제대로된 정책과 국민을 위한 정치관을 가진 후보들이 선택되기 어렵다. 이미 기존의 기득권을 지지하는 이들은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인데, 알다시피 한국은 저출산으로 젋은 이들의 수가 중장년층보다 적은 상황이다. 이러한 후진적인 정치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때문에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 펼쳐지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일본이 통일되고 저항이 별로 없는 국민들의 기질을 바탕으로 정부가 큰 도전없이 자신들의 정책을 펴나갈 수 있는대 반해, 우리나라는 무언가 정책을 입안하려고해도 더 많은 난관을 거쳐야한다. 일본은 기존 규율에 너무 저항을 하지 않아서 문제고, 한국은 규율을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서 문제다. 규율이 너무 심하고 변화하지않는 일본은 답답하고, 규율을 다 만들기도전에 너무 빨리 결과를 요구하는 한국은 정신이 없고 혼란스럽다. 둘 다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힌다. 정부가 양심적으로 또 엄청 유능하다면 일본의 방식이 나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국민이 저항을 하지 않기때문에 권력을 잡은 일부의 입맛대로 나라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현재 일본의 지나친 엔저는 기업과 국가를 위한 정책이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비싼 물가로 인해 그다지 여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벌어져도 민중들이 국가에 공식적으로 항의하지 못한다. 그들은 권력자에 대항해 싸워본 경험이 없기에, 그저 그들이 지휘하는대로 따를 뿐이다.

반면 한국은 최근 일본에게 라인이라는 플랫폼 기업을 뺏길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정부가 제대로 대처를 하지 않고 있다. 들끊는 민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할일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예방하기 전에 수 년전부터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어떻게든 자국의 기업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원했어야하는데, 그러한 노력을 펼치지 않았다. 물론 일본에 비해 극단적인 양당 정치 때문에, 우리나라 정부에서 어떠한 정책을 입한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행보를 보이면서도, 또 다수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상당수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훨씬 더 민주적인 정치 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부작용이라 볼 수 있다. 편향된 미디어나 정보의 소비를 통해 아무리 맹목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더라도, 그 수가 많으면,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그 진통을 겪으면서도 상당한 존재감을 갖는 나라로 성장했다. 비록 모든면에서 원하는 것 만큼 효율적으로 성숙하게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한국이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긴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그 특유의 역동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메이지 유신이후 일본은 오랫동안 변화를 겪지 않았고, 또한 변화를 거부한다. 이러한 일본이라면 앞으로 이들이 본질적으로 바뀔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은 되돌아가더라도 항상 방향을 수정한다. 너무 빨리 바뀌어 정신이 없을 정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성공을 위해서 계속해서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수정한다. 이런 한국이라면 그래도 앞으로 더 성숙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바뀌지 않으려는 것과 계속해서 바뀌려는 것을 비교한다면 아무래도 계속해서 바뀌는 것에 조금 더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필자는 그래서 아직도 한국이 일본보다 조금 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현실: 쉽지않은 한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본에게 식민지 배상 및 사죄에 대한 언급을 계속해서 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현재 전 세계를 주름 잡고 있는 유럽 및 미국의 선진국들이 대부분 같은 가해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베트남, 영국과 인도 및 파키스탄도 서로 우리나라만큼 식민지 시대에 대한 보상이나 사죄에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같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대만조차도 우리만큼 일제시대에 대한 피해의식이 크지않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현실이 우리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어줄 만큼 우리에게 호의적이지않다는 말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일본이 우리에게 “아직도 지난 과거를 이야기하냐?”라며 무시하는 태도를 고수할만하다.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A급 전범 위패를 빼내고 그 대가로 야스쿠니 신사를 국립묘지화하는 수순을 밟는다면, 미국, 중국, 일본이 한편에 서고 한국이 고립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이 문제로 삼는 것은 일본의 전쟁 행위이지 식민행위가 아니가 때문이다. 이렇듯 식민지 문제에 관한 한 국제 환경은 우리에게 녹록지 않다. 식민 지배의 불법성 인정과 법적 배상 요구는 일본이 응할 리도 만무하지만, 진짜 그렇게 하려면 과거 식민 종주국들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여파가 그들에게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주의적인 대일 자세로는 한 치의 진전도 보지 못한 과거의 상황을 반복하게 된다.

중국 역시 난징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집단 사살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에게 강경하게 우리와 함께 압박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중국 역시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 왜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만주에 있는 우리 한반도의 역사 유물, 특히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해 왜곡해서 가르치고 있다고한다. 아마도 만주가 본래 한국 역사의 일부였다는 것을 부정하고 본래 중국의 영토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들도 진실을 비틀어야하는 입장이니만큼, 순순히 우리와 같이 행동하고 싶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와 충돌하는 입장일 것이다. 미국은 어떤가? 어쨌든 우리와 일본은 중국 및 공산세력을 견제하는 세력으로써 수십년을 외교적 동맹으로 지내왔고, 미국은 일본과 한국이 서로 문제가 생기기를 바라지 않는다. 중국을 견제하는 동아시아의 미국 우호 세력이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다른 국가를 한 동안 지배했던 과거 열강 출신으로써,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한국의 보상 요구에 무조건 공감해 주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견해도있다. 안타깝게도 지금 전세계적인 정세는 우리보다는 일본에게 조금 더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행위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 다만 그 목적이 한국과 일본이 자유와 민주, 법치와 평화의 세계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단순히 민족주의를 선동하기 위해, 언론사든 출판사든 혹은 시민단체든 자신의 이익이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일본을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그의 어록에서, 또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서도, 이승만의 <일본의 가념을 벗긴다>에서도, 심지어는 3.1 운동의 <기미독립선언서>에서도 일본을 무조건 배척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충고하면서, 그 길에 벗어나 같이 자유, 민주, 평화의 세계로 나아가자고 타이른다. 이 것이 우리가 앞으로 택해야할 일본에 대한 자세다.

박훈 교수의 이 말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이웃을 대해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은 분명히 잘못을 범했고, 우리는 그 것에 대해 분명 비판을 멈춰서는 안된다. 독일 나치에 대한 비판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무조건 일본이 잘 못했고 한국이 희생양이다라는 주장만 하면서 일제시대 일어난 일들에 대한 본질이 아닌 수 밖 겉핥기 식의 말은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될 뿐이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마냥 귀기울여 줄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어떤 사건으로 어떤 피해를 주었으며, 그 계기와 원인은 무엇인지를 최대한 깊게 분석하여 확실한 근거를 찾아 우리가 주장하고자하는 바를 논리있게 펼쳐야한다. 단순히 반일을 위해 일본의 만행을 나열하기만하고, 그 만행에 대한 연구와 탐구를 등한시한다면, 그저 국수주의와 배타주의로만 남을 뿐이다. 김구 선생도, 안창호 선생도, 안중근 선생도, 3.1운동의 선배들도 표면적으로 일본의 제국주의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당장에 일본이 우리와 화합하면서 단순한 동료 이상으로 민주와 평화같은 세계 시민의 가치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일본은 우리의 뒷통수를 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자행했고, 최근 네이버 라인 자회사의 강탈 시도로 그들의 한국에 대한 열등감이 분명하게 다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갑자기 약 1세기 넘게 지배해온 극우정권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국수주의를 부추기고 일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위해 역사 문제를 거론하며 그들을 비난하는 수준에서 멈추는게 아니라, 당장 차오르는 감정을 일단 가라앉히면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그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할지에 대한 큰 그림의 전략을 세우고 그에 따라서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 것이 가능하려면 일본이 밉다고해도 그들에 대해 최대한 알 필요가 있고, 그러러면 그들의 역사와 문화 등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들이 헛된 주장을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반박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들은 거짓되고 왜곡된 진실을 더욱 뻔뻔스럽게 주장할 것이다. 앞으로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위해, 나와 내 나라를 보호하고, 나의 국익을 위해 내 나라를 대변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역사에서 근 1세기 정도를 제외하고는 일본이 한국에 앞선적이 거의 없었다. 그 전까지 계속 일본은 한반도의 문화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일본 왕실도 백제가 근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오만했고, 그 오만함으로 임진왜란, 그 이후 일제 강점기를 자초했다.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후로는 우리 안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고, 앞서간 세상을 따라가기위해 그 어느나라의 사람들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지금 일본과 거의 대등할 정도의 국민 소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근 1세기 동안 한국에 앞섰으나, 그들 스스로의 오만함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핵 무기를 맞고 투앙했다. 그 이후에도 한국 전쟁을 통해 또 한번 일어날 기회를 얻었으나, 그 오만함은 다시 드러나 주변국들의 추격을 허용했다. 지금 라인을 뺏으려는 일본의 만행은 결국 스스로 바뀐 세상에 많이 뒤쳐졌기에, 이에 대한 열등감과 조급함이 매우 심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래서 정치적 우방이라는 것을 잊고, 무례하게 후진국 독재국가에서나 할만한 선택을 한 것이다.

나는 한국이 앞으로 동아시아의 정치를 이끌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비록 중국과 일본에 비교해 조금 더 작을지 몰라도,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역이용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대만이 그들의 지정학적 위치와 반도체 산업의 중심임을 이용하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잘 하는 것처럼, 우리 한국도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북한 사이에서 충분히 실리적이고 지혜로운 외교로 어느 한 쪽에도 크게 쏠리지 않으면서 우리가 얻을 것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대만 만큼, 혹은 그 이상의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주변국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박훈 교수의 말마따나, 카페에서 루쉰의 <아Q정전>의 의의와 소설이 나온 배경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지하철에서 일본의 고전 소설이나 역사서를 읽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혹은, TV 프로그램에서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 전후로 미국을 둘러싼 국제적 정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되면 좋겠다.

참조:

(1) https://pixabay.com/photos/river-buildings-city-urban-5572289/

(2)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130351.html

(3)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40311209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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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자(Learner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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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배우는 자(Learner Of Life)

배움은 죽을 때까지 끝이 없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배움을 멈추는 순간, 혹은 배움의 기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순간, 우리의 삶은 어쩌면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배운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배울 수 있음에, 그래서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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